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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정 Jul 11. 2024

하찮고 위대한 쓸모

뉘른베르크에서 온 통영 여자의 50대 청춘 드로잉 에세이 ep.91

하찮고 위대한 쓸모

   

식당에 갔을 때 첫인상은

어떤 물을 내주는 가다.


한국에서 최근에 간 식당은

끓인 차 같은 것을 적당한 온도로 식혀

스테인리스 보온 주전자에 담아주는데

안심하고 마실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또 마실 수 있었다.

손님이 마실 물부터 정성을 들이는

가게의 음식은 더 따져볼 것도 없다.

그런 집은 대체로 음식 맛도 좋다.          


독일 식당에 가면 물을 주지 않는다.

돈 주고 사 먹어야 된다.

공짜로 주는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이다.

뜨거운 물 한 잔과 미네랄워터를 시켜

미지근한 온도로 섞어 마신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미래에는

물을 사 먹는다고 해서 큰 충격을 받았는데

독일에서 물을 시키면

이 뜨거운 수돗물을 주는 것도

너무 불친절해서 진짜 충격받는다.


이 지역 프랑코니아 사람들은

우리 토영사람처럼 마음은 안 그렇다는데

평소에도 화가 많이 난 얼굴을 하고 있고

한번 더 시키면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짜증스럽게 물 잔을 테이블에다

집어던져 버리고 간다.


이런 걸 겪고 살다가

교토에서 물을 시킨 경험은 큰 감동이었다.

뜨거운 물을 부탁하면

어느 정도 뜨거운 물을 원하는지

귀찮을 정도로 자세하게 물어보고

어떤 곳은 찬물을 같이 주면서 원하는 정도로

직접 섞으라고 두 잔의 물을 주기도 했다.

나중에도 온도가 괜찮은지 다시 와서 물어봐줘서

나 같은 사람은 그런 배려가 얼마나 고마운지.


올해부터는 물은 미리 원하는 온도로 섞어

150ml짜리 보온병에 넣어 항상 가지고 다닌다.

종이컵 한 잔의 물이 들어가고

가벼워서 작은 가방에 쏙 넣고 다니며

가는 곳에서 수시로 리필해 마신다.

나에게는 생명수다.

위급시에 위산을 희석시키는 구급약이고

틈틈이 목을 더 자주 축이고

수시로 깜빡한 약을 챙겨 먹을 때도 유용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에구 이 작은 보온병을 어디다 써?

소꿉장난 할 거야? 했는데

하찮지만 나에게는 위대한 쓸모가 생겼다.

미니보온병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덕분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50대청춘드로잉에세이 #하루한편 #독일통영댁

#시어머니도꼭필요하다고해서사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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