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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하세연 Mar 18. 2023

응급실

미국살이 12년 만에 처음

아내: "어떡하지? 피가 나는 거 같아"

새벽 1시,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불안감을 보이는 그녀.

나: "색깔은? 많이 났어?"

어디서 찾아보고 들은 건 있어서 기본적인 것을 체크해 보았다. 

하지만 날로 먹은 지식이 깊이가 있겠는가, 최악인지 아닌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뿐.

일단 아픈 곳도 없고, 많이 있는 사례라고 하니까 일단 자고 아침에 다시 보자. 

아침에도 계속 출혈이 있으면 일단 응급실을 가기로.

하지만 일단 잔다는 것 자체가 아주 힘든 일이었다. 

거의 반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에 담당의사에게 물어보니 응급실을 가보란다.

그래서 필요한 걸 준비하고 직접 운전해서 정해진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지하 주차장에서 처음 반겨주는 주차비, 안 그래도 미국 병원 시스템 화나는데 진짜 너무하네

응급실 병원비 엄청 비쌀 텐데 그걸로 성이 안 차나 

하루종일 답답하고 험난한 응급실의 시간이 이렇게 거지같이 시작되었다.


도착이 대략 오전 10시, 접수를 하고 대기

오전 11시, 응급실 방에 옷 갈아입고 대기

낮 12시, 피검사를 위한 채혈

오후 1시, 처음 의사 대면 후 오늘 진행될 과정 설명

의사의 설명, 대략 25%의 임산부가 출혈을 경험하고 이중 반은 괜찮고 반은 유산이 된다는 설명

오후 2시, 초음파검사실로 이동 후 초음파 검사

오후 3시 30분, 소변검사

그리고 오후 4시, 의사의 소견

의사: "I'm sorry, it looks like miscarriage."

우리는 이미 각오가 충분히 되었기 때문에 견딜만했다.

일찍 몸과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주신 거라 여기고 감사하기로.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되새기기로.


이제 하루가 끝나나 생각했는데, 응급실 의사가 우리 담당 의사에게 알려주고 다시 의논한 뒤 오겠다고 한다.

그리고 5시쯤,

의사: "담당의사가 말하길, 혹시나 1%의 찬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집에서 쉬고 이번주에 병원 예약을 꼭 잡아서 진료를 다시 하자고 하네. 혹시 출혈이 너무 심해지면 응급실에 다시 오고, 그게 아니면 예약 잡아서 다시 진료받으러 와"


아직 우리 만두 있는 건가? 

짐을 챙기면서 간호사들에게 좀 더 질문을 했는데

그들의 대답이나 배려는 이미 결과를 예상한듯한 태도여서 말해준 가능성만큼의 기대감을 갖기도 어려웠다.

하루종일 사용했던 응급실 방을 비우면서 만두를 두고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슬픔이 내 맘에는 찰랑거렸다

집에 와서도 아내는 생리통과 흡사한 지속적인 통증을 겪었고, 

하루종일 너무 진이 빠져서 일찍 쉬기로 했다.


힘든 하루를 되돌아보니 과정 하나하나 사이에 슬픔을 한 바가지씩 마음에 부어 넣었고

그 와중 사이사이 병원비 걱정하는 내 꼴을 보며 스스로와 사회에 분노를 섞어 넣었다.

그렇게 혼합된 감정은 한없이 무거웠고 그만큼 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내는 두 문장을 하루종일 되뇌었다.

"내가 뭘 잘 못했을까?"

"오빠는 괜찮아?"


잘못이 있다면 술을 즐기는 내 몸과 충분히 다정하지 못한 내 문제일 것 같은데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오늘의 이 일이 우리 가정을 오랫동안 더 단단히 해주는 하루였기를.


(03/0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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