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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없음'이 아니라 '동의 없음'이다

'강간죄 성립의 조건'을 따지는 누군가를 향해서

바보야, 중요한건 저항이 아니라 동의라고!


2018년 9월 3일 어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토록 하는 형법개정안을 3일 발의했다.

지난 8월 14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무죄판결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사법부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를 담은 개정안이었다. 

사실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범죄"로서 비동의 간음, 강간이 성립된다고 보는 이 시각은

기가 막히게도 안희정 무죄판결을 선언한 재판부(판사 조병구)가 짜깁기로 언급한 그 개념이다.


비동의강간죄, 관련해서 많이 등장하는 동의 여부에 관한 문구. 이걸 안희정 무죄판결 재판부는 돼지목에 진주, 격으로 써댔다;



누구 맘대로 죄를 사해주나


지난 2018년 8월 14일에는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쪄 죽을 것 같은 더운 날씨에도 길바닥에 수시간을 서서 시위에 참여하였었다. 

위력에 의한 강간, 대한민국의 일하는 (혹은 모든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그 성폭력이

"성폭력이 아니다"라고 눈 가리고 아웅한 재판부

적어도 상식 있는, 폭력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능력이 있는 국민들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아니 가해자 스스로 자신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말 뿐일지언정 - 그 이후의 행보를 보면 그게 분명하다-

사과까지 하고 나왔는데

사법부가, 이 사회의 남성화된 기득권이 다시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해준 것이다.


이 글 내릴까봐,박제해뒀다.이게 성지글이 될 줄이야-_-가해자 당사자가 합의에 의한 성관계가 아니었다고 인정했는데

전 국민이 '그건 강간이지'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나도(내 친구도, 내 엄마도, 내 언니도) 그런 일 그런 억울함 당한 적 있지"

라고 공감했던 것이 피해자의 증언이었고 용기있는 고백이었다.

그럼 이 많은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저항흔' 가득한 상처입은 몸으로

일상생활도 못한 채, 정신적으로도 온전치 못한 상태로

생계를 자기 삶을 놓았어야 했나?

답은 당연히 '아니다'일 것이다.


그런데 사법부에게는 '그렇다'였나보다.

판사의, 재판부의, 그리고 그 재판부의 말도 안되는, 

해명이랍시고 내놓은 보도자료에는 이 모든 것을 

'피해자 답지 않은 태도'로 치부해 버렸다.


시위 중에 찍었던 사진. 당시 신지예 전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나와서 발언 중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서프러제트, 그리고 20180814 우리는 계속 화가 난다


영화 <서프러제트> Suffragette, 2015를 기억하는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실제로 당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위해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고, 

길에서 소리를 지르고,

왕의 말 앞에 뛰어들었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겉멋 가득한 '신사도'에 가려진 성차별을 견디지 못한 여성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19세기 말 아직 강력한 신분제가 통제하던 영국 사회에서

빨래공장 노동자, 귀부인, 중상 계층의 (준) 전문직 여성까지 

이 여성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것은 '분노와 연대'였다.


그리고 우리는 8월 14일 그날도 그렇게나 화가 났다.

하물며 대통령도 여자라고 이제 여성 상위시대라느니,

여자들 무서워서 어디 말이나 편하게 하겠냐고 투덜대던 사회가

'사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민낯을 드러냈다.



조병구 판사가 빙구(..)같은 판결을 내렸던 서울서부지방법원 전경. 저기 보이는 저 창문으로 돌멩이를 던질 기세였다, 우리모두



저항없음≠동의


(무려)조선일보가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재판부를 향해서 조목조목 따지고 든 글을 보면,

다음의 여섯가지 주안점을 두고 이 판결의 '말도 안됨'을 알아볼 수 있다.

+좀 아이러니하긴 하다. 말도 안되는 판결을 굳이 논리적으로 따져가며 반박해야 하다니...

1. 위력의 존재와 행사
2. 성관계 후 행적
3. 상화원 사건 (진술의 일관성에 대한 재판부 자의적 판단)
4. 저항하고 숨어야 피해자?
5. '합의 아니었다' 인정한 안희정
6. 항소심 뒤집기 쉽지 않아


특히 4번의 '충분한 저항'에 따른 성관계 동의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는 다음과 같은 반박논리를 제시한다.


법원이 재판 기간 피해자다움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도 있다. 일반적 피해자 모습과 달리 일에 매진한 모습 등을 두고 피해자답지 않다며 불리한 요소로 본 것. 안 전 지사가 성관계를 하려 하자 김씨가 '아니에요, 아닌데요'라는 식으로 저항한 것에도 '소극적으로만 저항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피해자다운 행동은 사건 즉시 발현될 수도 몇 년 후에 나타날 수도 있어 이로 인한 판단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1976년 대법원은 부인이 경영하는 미장원에 고용된 직원과 성관계를 맺은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강한 저항이 없었지만 보호·감독 관계로 보고 위력에 의한 간음을 인정했다. 서정욱 변호사는 "위력에 의한 간음을 일반 강간죄처럼 피해자의 저항을 요건으로 하는 것은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자발적인 동의 여부가 기준이 돼야 한다"고 했다.


동의를 묻지 않아도 되는 관계, 이것이 바로 위력이 작동하는 관계다.

관료제 끝판왕 조직에서 살아남아서 위로 올라간, 판사가 몰랐을 리 없다.

남성의 위력이 작동하고, 그 위력이 성착취에 어떤 자원으로 쓰이는지 잘 알것이다.

그런데도 기계적인 저항의 유무 만을 따져드는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그녀도 좋다고 했어?


이 사회는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훅 들어오곤'

"에에? 니가 싫다고 하질 않아서~"

"진작 싫다고 하지"

"왜 그땐 가만히 있어 놓고선 이제와서.."

라고 되려 피해자/ 사과받아야 할 사람에게 엄포를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럼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게 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련히 좋았겠거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 몸을 다루는 일에, 자기 존엄성을 다루는 일에 대해서

어련히 알아서 저항을 포기하는 이는 없다.


*난다작가의 <어쿠스틱 라이프> 248화 /진지해진다/ 中에서 발췌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기지 않고 '서진이(남자아이!)의 동의 여부'를 물어봐주는 엄마 난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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