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숫자에 미동이 없다.
다소 어색하게 툭 튀어나온 배가 수줍게 눈에 띈다.
걸어가자.
한 층 한 층을 걷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이미 숨이 가빠진 나란 사람부터
운동화 끝에 붙은 진흙까지
흔적을 남기며 걸어간 앞사람의 타액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적나라함을 마주하며 올라선다.
한 자릿수의 숫자가 두 자리 숫자로 바뀌고
허벅지에 피로함이 스며들 때
자연을 향해 몸서리치는 나방을 보았다.
눈앞에 있지만 나갈 수 없는 투명한 고향
잡을 수 없는 무력함에 다른 곳으로 날아가길 희망하지만 같은 곳을 향해 날개만 푸덕댄다.
지나쳐 올라간 계단에 이미 명을 다한 또 다른 벌레들.
다시 내려가 창문을 연다.
내게 다가오는 퍼덕거림의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방충망만 열면 되는데 잠깐만 잠깐만.
계단을 올라올 때 보다 더욱 가빠지는 숨소리와 꿈틀대는 근육들.
창문은 열렸고 자연의 바람 그대로 온전히 얼굴에 닿았다.
가라.
나를 놀리는 건가.
그는 내 땀이 식을 때까지도 한참을 주변만 퍼덕이며 나와 같은 공간을 유영했다.
난 나방에 대한 두려움에 혼이 나갔고
그는 눈앞에 열린 자유의 문을 못 찾아 정신이 나갔다.
나갔다.
나는 집에 왔다.
누군가의 집이 누군가의 감옥이었다니.
내일 또 계단으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겨울이 되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