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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PI May 07. 2022

적당히 살아가는 이야기

얼마 전에 볼일이 있어 J 양과 종로에 갔다가

이른 더위에 지쳐 빈속을 채우러 적당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영춘옥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근방에서는 꽤나 오래된 국밥집이었다.


우리는 적지 않게 이런 일을 경험한다.

모처럼 맛있는 식사를 하고자 신중히 메뉴를 고르고 식당을 검색한 뒤에 찾아가면

고교 급식소같이 부실하거나 (요즘 고등학교는 아닌 듯하지만) 맛이 없.다.


그런데 별 고민 없이 들어가 적당히 메뉴를 보고 주문해 보면 

입맛에 맞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묘한 일이다.

노력하고 고민을 하면 실패하고 적당히 괜찮겠지 싶어 들어가면 성공한다니.

불공평한 일이다.


한 해가 갈 때마다 새롭게 붙이는듯한 81년 전통의 영춘옥.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자와 식사를 할 때 피해야 할 음식으로

국밥을 꼽고는 하던데,  J 양은 생각 외로 국밥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쩌면 기대하지도 않은 걸까?)

불만 없이 다정하게 먹어주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J 양은 국밥이 대한민국의 소울 푸드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로 이야기하자면 국밥에 관해선 무정부주의자였다.

그저 돈 만 원에 배부를 수 있는 음식 정도로 생각했다. 

맛있지만 너무 뜨겁고, 배부르지만 포만감이 강해서 속이 불편하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도배 일을 할 때였다.

도배 반장이 점심이라면 국밥 말고는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라 

나는 그를 따라다니며 도장 깨는 무술인처럼 1년간 팔도를 유랑하며 국밥 깨나 말아본 사람이 된 것이다.

(생각보다 국밥이란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또 나름의 세계가 깊다.)


나는 그 가운데 서울식 설렁탕을 가장 좋아한다.

오랜 시간 고아 낸 뼛국물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소금 간을 치지 않은 그대로 먹는다.

소금 간을 치지 않으면 뼛국물 본연의 풍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사이사이 씹히는 소고기와 매큼한 대파가 누른 맛을 없애고 입맛을 되돌려놓으니

배가 차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어버린다.


어쨌든 국밥이라는 건 지역마다 조리법도 조금씩 다르고 먹는 방법도 많으니 물릴 일이 별로 없다.

다 같이 먹기에도 좋고, 혼자 와서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대한민국의 소울 푸드라는 말에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다.


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역시 국밥집이다. *종로 이문설렁탕


J 양은 해장국을 , 나는 곰탕을 주문 해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모두가 아는 맛.

이 정도만 되어줘도 성공한 식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속을 든든히 채우고 나니 볼 일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그르친 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사소한 일까지도 너무 신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묘한 곳이기 때문에

항상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는 않는다.

어쩌면 지금은 고민하지 않고 

적당히 식당 찾듯 살아갈 지혜가 필요한 순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큰일에 앞서 항상 배를 채우고, 적당히 실재를 바라볼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닌텐도 슈퍼마리오의 악당 쿠퍼는 국밥의 일본 발음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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