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맛, 한라봉 주꾸미무침
평소 신맛이 강한 과일보다 단맛이 강한 과일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감귤류를 자주 먹지는 않는다. 게다가 우리 식구들은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더 그렇다. 그래도 1월이니 제철 과일인 한라봉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장을 보다 과일 코너로 향했다. 한라봉은 다른 감귤류에 비해 신맛보다는 달콤한 맛이 더 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트 한편에 상자에 넣어 진열해 놓은 한라봉이 2만 원에서 몇 천 원 모자랐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다. 살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한구석에 비닐로 포장해놓은 못생긴 한라봉이 보였다. 박스에 든 것과 개수는 같은데, 가격은 거의 절반이었다. 횡재한 기분에 냉큼 한 봉지 집어 들고 돌아왔다. 집에서 맛을 보니 과즙도 많고, 달콤하고 정말 맛있었다. 안 샀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내친김에 반찬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농촌진흥청에서 매월 제철 식재료 몇 가지와 조리법 등을 홈페이지에 공유하는데, 그중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한라봉 낙지무침.’
남편이 오징어에 비해 식감이 부드러운 낙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터라 낙지 대신 좀 더 꼬독꼬독하게 즐길 수 있는 주꾸미를 사용하기로 했다.
주꾸미는 눈알과 입, 내장을 제거한 후 밀가루에 한 번 바락바락 주물러서 잘 헹군다. 그런 다음 소금물에 데쳤는데, 권장 시간만큼 데치니 너무 물컹거리는 것 같았다. 평소 물컹거리는 식감을 좋아하지 않아서 조금 더 데쳤다. 오래 데칠수록 부피가 많이 줄어든다.
데쳐서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 다음, 고춧가루, 고추장, 설탕, 다진 마늘, 참기름, 식초를 넣어 만든 양념장에 버무렸다. 양념장에 한라봉 반 개의 즙도 넣었다. 양파와 미나리도 같이 버무리는데, 미나리의 경우 줄기가 연한 밭미나리를 구입했다. 그런 다음 남겨둔 한라봉 반 개를 슬라이스해서 넣어 가볍게 버무린 뒤 통깨를 솔솔 뿌렸다. 이 방법대로 골뱅이나 데친 오징어를 버무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주꾸미무침에 스민 한라봉의 은은한 향이 좋았다. 양념장을 넉넉히 만들어 소면에 비벼 먹어도 좋을 듯하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닭다리살 석쇠구이도 하였다. 먼저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 생강술(청주에 슬라이스한 생강을 얼마간 담가둔 것)로 밑간한 닭다리살을 구웠다. 껍질 쪽을 아래로 해서 먼저 구우면 나중에 닭 껍질도 잘 벗겨지고, 기름도 나와서 좋다. 닭다리살을 뒤집을 때 편 썬 마늘도 넣었다. 구멍이 뚫린 뚜껑을 덮고 속까지 익힌 다음, 진간장, 전복 굴소스, 요리당, 설탕, 다진 마늘, 후춧가루, 생강가루, 생강술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와르르 붓고 조렸다.
양념장에 조린 닭다리살을 석쇠에 얹고, 가스레인지 불에 양면을 구워 불 냄새를 입혀주었다. 이렇게 석쇠에 얹어 가스레인지에 바로 구우면 기름과 양념장이 떨어져 가스레인지가 지저분해지기 마련이지만, 모두가 직화구이를 좋아해서 고기든 생선이든 이렇게 구워 먹는 편이다. 청소하기 좀 귀찮기는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걸로 보상 받는다.
한라봉 향이 스민 주꾸미무침 덕분인지, 불 냄새 가득 입힌 닭다리구이 덕분인지, 딸아이 얼굴에도 내내 만족스런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오늘의 식단>
- 구뜰한 청국장찌개
- 새콤, 달콤, 매콤! 한라봉 주꾸미무침
- 석쇠에 껍질 바삭하게 구운 닭다리살 구이
- 동치미와 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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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매거진 <소박하고 다정한> 전체글 둘러보기!
https://brunch.co.kr/magazine/sobakda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