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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Sep 11. 2023

엄마 반찬을 먹지 않겠다고 했지만

아주 잘 먹고 있는 요즘이다.

엄마 반찬을 아주 잘 먹고 있는 요즘이다. 1년 전쯤에 엄마가 주는 반찬을 받아오지 않겠다고 구구절절하게 적었던 게 무색할 지경이다.


비로소 엄마가 주고 싶은 사랑의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기보다는 태세 전환에 좀 더 가깝다.      


1년 동안 식욕을 완전히 잃었었다.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일주일 내도록 된장찌개와 밥만 먹거나 그마저도 의욕이 없으면 김, 김치, 계란, 참치캔 따위로 연명하거나 산양유 단백질 같은 걸 우유에 타 먹었다. 먹고 싶은 걸 참아야 하는 고통이 사라졌지만 먹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중2 때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해 왔던 강박적인 다이어트를 처음으로 하지 않게 된 날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정상 궤도 위에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엄마 반찬이 유용해진 거다. 이런 식으로 엄마의 반찬을 환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덕분에 사라졌던 식욕 일부가 돌아왔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 헛헛했지만,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이 컸다. 사랑과 정성의 힘은 정말로 존재한다.      


예전엔 맞벌이하느라 바쁜 딸을 위해서, 지금은 평범한 결혼 생활을 못하는 딸이 골골대며 밥을 못 챙겨 먹을까 봐 엄마는 전보다 더 다양한 반찬을 만들어 주신다. 이게 무슨 불효인가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 오르지만, 가슴 아파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엄마가 나를 낳았기 때문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뻔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엄마에게 닭볶음탕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날 전날부터 끓여두어 양념이 잘 배어든 닭볶음탕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언니는 뭘 만들어 달라고 말한 동생이 신기했던지 엄마에게 저 애가 닭볶음탕을 잘 먹고 갔는지 물어보더란다.      


엄마의 슬픔과 고통까지 떠안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대체로 화가 났고, 엄마의 감정이 부당하다고 느꼈고 끝내는 엄마가 버거웠었다. 오로지 딸 걱정뿐인 엄마를 버거워하는 자신이 소름 끼치게 싫어지게 되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인 게 확실해지곤 했다.      


혼자 있기 힘들 땐 매일같이 엄마를 찾다가 이젠 2주에 한 번쯤 엄마를 만나러 간다.(역시 태세 전환이 빠르다.) 엄마는 여전히 상다리 부러질 듯 밥상을 차려주시는데 아빠는 본인한테는 그렇게 안 차려준다고 툴툴거린다.      


설거지가 끝나기도 전에 샤인 머스캣을 먹이려는 엄마에게 배가 꺼질 틈을 안 주고 막 먹인다고 깔깔 웃으며 좋아하지 않는 샤인 머스캣을 집어 먹었다. 이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말이 부담스럽지도 마냥 가슴 아프지도 않다. 엄마의 진심일 뿐임으로 거기에 내 감정을 얹지 않으려 한다.  엄마의 마음만 보기로 했다.


때늦은 점심을 드시는 부모님의 식탁은 단출하다. 고추 장아찌, 멸치볶음과 고명도 없이 푸성귀를 같이 삶아 낸 잔치 국수. 왜 이리 부실하게 먹냐고 묻자 엄마는 국수에 뭔 반찬이 필요하냐고 말했고 아빠는 또 냉큼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웃다가 사레에 들렸다.      


양손에 엄마가 챙겨준 반찬을 한 보따리 들고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목숨만 부지한다는 아빠의 말이 너무도 웃겨서 침대에 누워서도 웃었고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웃는다. 부지런히 엄마의 반찬을 먹어 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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