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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Oct 11. 2023

혼자 사는 여자

이런 세상에서 과연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영도에 있는 깡깡이 예술마을의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경고음이 요란스럽게 울렸고 나는 어리둥절 그 자리에 서서 누군가 나오길 기다렸다. 얼굴을 붉히며 나타난 남자는 18 욕지거리를 내뱉곤 한 대 칠 기색이더니, 곧이어 들어오는 남편을 보자 얼굴색을 바꾸고 어디론가 재빨리 사라졌다.

     

물론 그것이 살면서 처음 들었던 욕은 아니었다. 늙수그레한 4명의 남자들로부터 x 년아 당장 차 세워라 안 그러면 칼로 찔러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도 들었지만, 차선을 급하게 바꿨기 때문이지 여자라서 듣는 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여자라서 들었던 욕이 분명했다. 대학 졸업 후에 곧장 지금의 남편을 사귀고 결혼하게 되면서 혼자 살아가는 삶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여자가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것 같다.      


여중, 여고, 여학생이 많은 학과를 나와 여자들이 핵심인력인 회사에 다녔음에도 셀 수 없는 성차별과 성추행을 경험했고 법적으로 얽히지 않은 것만으로 안온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아이 낳지 않으면 아가씨나 다름없다는 신박한 추행을 일삼는 남자들은 어찌 되었든 내게 남편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잊지 않았고, 그 사실이 방패막이되어 주는 듯했었다. 여성 혐오와 관련된 범죄들을 보면서도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조금은 무심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앞으로 혼자 살게 될 것 같은 나는 갑자기 이 문제가 매우 중대해졌다.

     

한집에서 남편과 따로 살게 되면서부터 태생적 겁쟁이인 나는 더욱더 움츠러들었다. 누군가에게 혼자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당하면 괜스레 불안했고 몰래 집까지 쫓아와서 해코지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지난 20년간 피, 땀, 눈물을 갈아 넣어 겨우 들어선 중산층의 삶에서 사회적 약자로 구분되는 삶으로 들어가길 거부하고 어떻게든 이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쾌적하고 넓은 집, 인프라가 갖춰진 안전한 동네, 적어도 보호자 칸에 누구를 적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 삶 같은 거 말이다. 이것은 내가 이혼을 망설이는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이혼한다고 해서 당장 사회적 취약계층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고 모든 여성 1인 가구를 사회적 약자라고 치부하는 것은 편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인류가 집단생활을 해온 지는 20만 년이고 혼자 살기를 도전한 기간은 고작 50~60년 밖에 되지 않지만(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3%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특히, 중년 1인 가구는 청년이나 노인 1인 가구만큼 다뤄지지 않는다.   

   

이는 중년의 여성 1인 가구가 사회적으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회 복지 정책이 청년과 노인에게 쏠려 있듯이 중년이 처한 상황은 개인 역량의 따른 문제와 결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도움을 요청하기보단 혼자서 해결하는 쪽을 택하는 편이었다. 무엇이든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하고 익숙했던 내가, 심지어 고독사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내가, 정작 혼자 사는 삶을 두려워하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사회적 취약계층이 되리란 불안만으로는 내 두려움을 설명하긴 역부족이었다.      


생각해 보니 혼자인 순간들은 많았지만 정말로 혼자였던 적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하는 일을 즐길 수 있었던 건 가족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결코 독립적이라 가능했던 게 아니었다.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것, 지극히 의존적인 내가 그 일을 결코 잘 해내지 못할 거란 확신이 내 두려움의 뿌리였다.     

 

평생을 함께하리라 믿었던 사람에게서 외면당하는 건 뼈저리게 아팠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이제는 가슴이 아프지도 그를 원하지도 않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결국엔 또 받아들임의 문제다.    

  

우리는 보통 어떤 관계에 걸었던 기대감이 좌절되어 외로움과 고립감에 허우적대며 도저히 내 힘으로는 그 상실감을 해결할 길이 없을 때, ‘인생 어차피 혼자’라고 내뱉는다. 정말로 그 말을 믿는다기보다는 순간의 위안으로 이용될 뿐인 거다. 혼자가 된 지금이야말로 ‘인생 어차피 혼자’라는 그 진리를 받아 들 때다. 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시작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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