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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Oct 24. 2024

개구리들이 터졌다.

9화

 혼자서 다른 도시로 운전한 건 처음이다. 겁도 없이 면허를 따자마자 친구들을 태우고 안개가 잔뜩 낀 고속도로를 달렸었다. 그때 국도를 까맣게 뒤덮은 개구리 떼를 만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비명을 내지르는 것밖에 없다는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해서 개구리들을 도로 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면 우리는 끝까지 비명을 질러댔을 것이다. 개구리들이 팡팡 터지는 상황이 계속되자 그 끔찍한 상황이 주는 어이없음에 조금씩 웃음이 삐져나왔다. 울고 싶었지만, 결국엔 웃으며 우리는 개구리 도로를 벗어났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탄식을 내지르며 어딘가에서 주섬주섬 우비를 챙겨 입기 시작했고 나는 쏟아지는 비를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맞고 서 있었다. 덕분에 뜨거운 태양 빛에 달구어진 몸뚱이의 열기가 한 꺼풀 식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피하지 않고 즐기는 자의 평온함이 이런 것이라면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도에서 팡팡 터져 죽었던 개구리들이 생각났다. 

 자주 밖을 나간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근현대 자수 전시를 보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고 거대한 작품들은 전혀 감동을 주지 않았다. 하나라도 자세히 보기 위해 작품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대고 신기해하는 사람들 뒤에서 최대한 건조하게 작품들을 보려고 애썼지만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괴로워졌다.      

 자수를 놓는 시간에 대해 알고 있다. 자수는 즐거움보다는 인내와 고통으로 이루어진다. 현실의 고통이 없다면 애초에 시작될 수 없는 작업이다. 그들이 견뎌내야 했던 고통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았다. 무엇이 저렇게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작품을 만들게 했을까. 그것들이 거대한 고통의 덩어리로 느껴져서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자수를 놓았다. 혼자 있었다. J를 기다렸다. 유독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J가 내 옆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내가 힘들어할수록 J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내가 힘든 걸 견디지 못했다.      


 -넌 내가 힘들 때마다, 단 한 번을 곁에 있어 주지 않았어. 그냥 아무 말 없이 옆에만 있어 달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부탁이었어? 야근한다고 연락하면 넌 집에 왔다가도 다시 밖을 나갔지. 기어코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에 날 들어서게 했어. 그리고 새벽에 만취되어 들어왔지. 흥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남편 분이 차에 치여서 응급실에 와 있어요.

-... 네. 그래서요?

-하아.. 보호자분. 남편이 지금 차에 치였다니까요!? 

-거기가 어느 병원이라고 하셨죠?     


의사는 황당하다는 듯 짜증 섞인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언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놀랍지 않았다. J는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했고 이번에는 만취된 상태로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였다. 응급실로 차를 몰면서 J가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내게서 걱정을 기대하는 J의 눈동자를 보며 걱정을 연출해야 된다는 걸 알았고 연기는 잘되지 않았다. J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하고 만류하는 나를 밀쳐내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 일로 두고두고 나를 원망했다.    

  

-네가 힘든 거, 난 알고 싶지 않으니까 나한테 말하지 마. 너 혼자 해결해. 

    

 J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에게 기댈 수 없는 존재지만 이럴 땐 유용하게 쓰여야 했고 그를 위해 걱정을 해야 했다. 그날 이후로 자수를 하지 않았다.      

‘귀하께서 ooo구청에 접수하신 신고가 처리 완료되었습니다. -ooo구 민원여권과 가족관계등록팀’        

비로소 이혼이 처리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재산분할 문제로 또 J를 만나야 했다.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겠다는 J의 전화를 받고 구청에 비치된 대형 수족관 속의 물살이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J는 조그만 직사각형 수조에 물살이들을 키웠었다. 그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수초 한 포기 없던 그곳에 마침내 바닥에 깔아 둔 자갈들마저 없어졌을 때, 아무것도 없는 그곳을 떠다니는 물살이들을 놓아주지 않는, 여전히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하는 그가 불편했다. 그 애들은 모두 죽었다. 30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은 J에게 전화를 거는 대신에 체중을 쟀다. 상주하고 있던 여자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몸은 생각보다 더 말라 있었다. 그제야 그가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그리고 내게는 사과를 하지 않는 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J는 지난 20년 동안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내가 떠나지 못한다는 믿음을 축적해 온 걸까. 아니면 내가 떠나기를 바랐던 걸까.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J가 물었다.     

   

-차 타고 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됐어. 

-여기 길 모르잖아.

-어. 몰라.

-그럼, 버스 정류장까지라도 데려다줄게.

-아니 됐어. 여기 근처에서 밥 먹고 갈 거야.

-그럼, 같이 먹을래?

-아니.

-... 어디로 나가는지는 알고 있어?

-아니.

-저쪽으로 나가면 돼.

-그래.      


굳이 어린아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출구를 알려주는 건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며 끝맺음을 맞이하고 싶은 그의 시나리오에 맞춰줄 생각은 없었으면서도 J가 알려준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이사할 때까지 어떠한 마주침도 대화도 없기를 내가 기억할 만한 장면 따위가 더 이상 연출되지 않기를 바라며 낯선 동네의 버스정류장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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