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 ing 였던 시기다. 정확히는 엔데믹이 오기 전.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서울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토지가 있는데, 그곳에다 빌라를 짓고 임대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그의 직업은 대기업 회사원이다. 사이드잡으로 하려는 계획이었다.
토지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핵심 업무지구와는 버스로 10분~15분 거리에 있었다. 점잖고 조용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고, 바로 앞으로 초등학교가 있어서 신혼부부가 살기에 괜찮은 빌라가 될 듯 했다.
그렇게 법인을 만들고, 설계도를 의뢰하고, 시공사를 선정했다. 사업비는 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첫삽을 뜨고 건물은 점점 완공되어 가는듯 했다.
완공 몇달 전, 빌라를 중심으로 한 전세사기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언론에서는 대대적인 빌라 사기 뉴스를 보도했다. 대출 이자도 올라 힘들어 하는게 보였다. 앞날은 불투명했고, 이자로 내는 금액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쌓여갔다.
동네에 몇 없는 신축빌라를 완성했지만, 얼어붙은 심리에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몇번 보러 오더라도 보증금이나 월세를 깎아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땐 임차인이 갑이었다. 불과 10개월 정도 전의 이야기다.
지인은 매일같이 나가 빌라를 쓸고 닦았다. 총 6세대가 있는 빌라였다. 집을 보러 오는 손님들이 신을 슬리퍼를 정리하고, 사람이 살지 않아 쌓이는 먼지들을 닦아냈다. 1층 세대에는 잔디가 있었는데, 잡초가 계속 자라서 잡초 제거 작업도 했다.
또 작년 여름 장맛비로 인해 지하주차장 (지하주차장이 있는 빌라였다.)이 침수당했는데, 그것 또한 보수하느라 공사비가 꽤 깨진 걸로 안다.
모두가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알다시피, 작년에는 거의 1년 내내 빌라와 관련한 전세사기 문제들이 보도되던 시기였다. 임차인들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서류도 꼬투리를 잡으며 의심했고, 계약 직전에 파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동산에 올린지 6개월만에 첫 임차인이 계약했다. 한번 보고 나서 바로 결정했고, 별 말 없이 계약서를 썼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 세대, 두 세대 계약을 차근 차근 계약을 완료했다. 입주 세대가 전체 세대의 1/2 를 넘기자 이때부터 경쟁이 시작됐다. 너도 나도 계약을 하겠다며 모여들었다. 자기가 더 빨리 계약하겠다면서 계약금 오픈런 현상이 벌어졌다.
사람들의 심리가 그런 것이다.
가장 먼저 계약을 해서 '최초'라는 리스크는 지기 싫고,
그렇다고 너무 늦게 계약을 해서 좋은 물건을 놓치고 싶진 않은거다.
그래서 늘 중간에서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약 1년이 지난 오늘날, 서울 신축빌라 씨가 말랐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된다.
당연한 현상이다.
일단 폭탄 돌리듯 번갈아가며 터졌던 부동산 PF부실 사태에 은행에서 대출이 안나왔을 뿐더러,
인건비, 자재비 급등으로 인한 공사비가 너무 올라버렸다.
지인이 약 2년 전 시공한 그 가격으로 절대 다신 건물을 짓지 못한다.
사업할 자금이 부족하고, 지출해야 할 비용이 커진데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심리가 전반적인데 누가 굳이 총대를 맬까.
뭐가 돈 된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 갈 일도 없고,
뭐가 돈 안된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것도 없다.
전세대 임대를 완료한 지인은 은행빚을 모두 갚고,
매달 월세로 캐시플로우를 만들며 조용히 웃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