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학년 때는 7급까지 추천하지만 안 따도 됩니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너무 낮아서 심각한 수준이라는 글을 많이 접한다. 어쩌다 학생들이 표적이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니 가르쳐주면 된다. 문제는 성인이다. 어떤 사람이 너무도 당당하게 ‘청화대’라고 여러 번 반복해서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평소에 정교하게 공부를 하지 않고 누가 떠드는 것을 귀로만 들어서 그렇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것과 저것을 세밀하게 비교하여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작업을 하지 않으면 푸른 기와집이라는 청와대가 영원히 청화대로 남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문해력이 낮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어려운 한자어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학습 만화를 읽다가도 단어의 뜻을 모르겠다고 뛰어와서 물어보면 한자어인 경우가 100%다. 성인의 경우, 한자를 모르면 공부해야 하는데 내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그 나이에 한자 공부가 무슨 말이냐. 이미 끝냈어야지.
그렇다면 한자 공부는 어느 정도 해야 할까? 수능을 보기 전에 천자 정도는 숙달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에 한자 자격증 4급을 땄는데 4급이 딱 천자였다. 그 천자로 수능에 나오는 고전 문학은 모두 쉽게 풀었다. 한자를 아니, 뜻이 금세 이해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어느 정도 외워야 할까? 아이가 흥미로워하면 150자 정도면 된다. 150자만 알아도 저학년에서는 수준급이다. 혹시라도 그것보다 더 외우고자 하는 아이라면 300자 정도까지만 권하고 싶다.
시험장에 가보면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2급까지 응시하는 것도 보이는데 한자나 한문으로 전공을 정하지 않는 이상, 정말로 권하고 싶지 않다. 살아가면서 2355자의 한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고생해서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끝나고 나면 외운 것에 절반은 까먹는다. 훈과 음을 기계적으로 외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벼리 기(紀), 벼리 강(綱)이라는 한자가 있다. 내가 이 한자에 관해서 물어봤을 때 벼리가 무엇인지 대답하는 아이를 한 명도 못 만났다! 기계적으로 한자를 외워서 그렇다. 벼리 기와 벼리 강은 그렇게 외우는 한자가 아니다. 벼리는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조정할 수 있는 줄이다. 모든 그물코는 벼리와 연결돼 있는데 벼리를 잘 조정하면 그물 전체가 바로 잡힌다. 그래서 벼리 기와 벼리 강은 훈과 음을 외운 뒤, 기강(紀綱)이라는 낱말로 머리에 넣어야 한다. 두 글자를 붙여 놓으니, 벼리는 어디 가고 뉘앙스만 남아 규율과 법도를 아울러 이르는 명사로 변신해 있다. 한자는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한자도 나의 전공에 아주 중요한 도구라서 내가 할 말이 많다. 우리 아이의 경우, 낱말의 느낌을 알려주기 위해서 한자 공부를 좀 시켰다. 왜냐하면 대화를 하다가 아이가 모르는 단어가 많아지면 내가 답답했기 때문이다. 소통을 위한 한자 공부의 시작이었달까.
쓰기는 시키지 않고 아주 간단한 한자만 눈으로 보고 그 단어가 쓰이는 낱말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한자 공부를 시켰다. 수영장과 수목원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수영장의 수는 물 수라는 한자라서 수영장에 가면 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되고 수목원의 수는 나무 수이고 목이라는 글자도 나무 목이므로 수목원은 수영장처럼 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나무가 있는 곳이라는 점을 알려주면서 한자를 노출시켰다. 시중에 나온 문제집 중에 이와 같은 공부를 시켜줄 수 있는 문제집이 있다. 그걸로 여러 번 뜻을 이야기해 줬더니 아이가 아주 즐겁게 한자의 의미를 익힐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공부하던 어느 날, 아이가 자격증 시험을 보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사실 나는 아이에게 한자 자격증 시험을 권유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한자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를 하면서 한자 시험 공부하기란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마다 시험에 나오는 한자를 펼쳐놓고 훈과 음을 달달달 외우고 채점하고 틀린 것을 다시 확인하고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던 기억이 너무도 안 좋게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에게 권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자도 시험을 보면 종이에 잘했어요~라고 써주던데 그걸 하고 싶다고 아이가 얘기해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그렇다면 몇 급부터 도전하는 것이 좋을까? 저학년 아이의 경우, 8급 시험은 50자밖에 되지 않으니 뭔가 시시해 보여서, 7급 150자부터 보는 아이가 많다. 그러나 나는 50자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저학년 아이가 외부에서 시험 볼 기회는 거의 없으므로 한자 자격시험을 본다는 것은 부모님과 떨어져서 처음으로 수험번호를 적고 답안지를 작성하는 경험을 하는 시간일 것이다. 그것을 체득하는 과정으로 8급부터 보길 권한다.
하나 더 팁을 드리면, 한자는 계속해서 보고 또 보고 또 봐야 외워지는 글자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제 날일과 달월을 외웠으면 오늘 불화와 물수를 배우고 다시 날일과 달월을 복습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까먹는다. 평소에 쓰는 일이 없는 글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아이가 까먹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무한 반복을 해주는 것이 좋다.
우리 아이의 경우, 8급 시험을 봤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요즘은 시험 점수가 높으면 상장도 온다. 아이는 자격증도 따고 상장도 갖게 돼서 어깨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그 뒤로는 7급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주 즐겁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꼭 한자 자격증을 따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격증은 시험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그 날짜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채근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저학년 아이가 시험 준비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굳이 딸 필요가 없다. 그냥, 날일, 달월, 불화, 물수, 나무목, 쇠금, 흙토를 달력을 통해 알려주는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살아온 삶에 깊이를 더해야 할 시기가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을 고민하고 잘못된 것을 날카롭게 찔러 바르게 정리하는 과정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위다. 그러나 이 시대에 어른이 있는 것일까에 대해 의심할 정도로 사람들 간에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느낌이다. 이것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잊어버려서 그렇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공부를 한다. 돈 많이 벌기 이런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러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연장이 필요한데, 그것이 한자다. 그런데 어느 날, 주객이 전도됐다. 공부의 목표가 한자가 돼서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전혀 모른 채로 채찍질만 하고 있다. 부모들이어, 한자를 몇 자 외운다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하더라도 훈과 음만 달달 거리고 외우면 벼리 기와 벼리 강을 앞에 두고도 기강을 모르는 날이 올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