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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Mar 06. 2024

범죄자가 살고 있어 잠복근무 중입니다.

10여 년 이상을 임대사업자로 살다 보니 별의별 상황을 겪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찌푸린날이 짜증스럽던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지역번호라면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지만 핸폰이라면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니 일단 받는 셈이다.


중저음의 남자는 00 경찰서에 근무하는 형사라며 우리 집에 범죄인이 살고 있어 잠복근무 중이란다.


주출입구의 비번을 알려달라는 정중한 전화였지만 사실은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었다. 


확인을 해 보겠다며 일단은 형사증을 문자로 받고, 해당지역 경찰서에 000이라는 형사가 있고, 현재 이런 이런 사건으로 전화가 왔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사실이니 협조 좀 해달라고 한다... 허걱.


죄명이 무어냐고 묻자 그건 자세히 알려줄 수는 없단다. 수사 중인 일은 말할 수 없다나 뭐라나.


살인범이나 강도범이냐 물어보면서 다른 입주민도 보호해야 하니 나도 알아야겠다고 우긴 덕에 악질 사기범이란 걸 알았다. 으응? 사기범이라면?


살인범은 아니니 다행이네... 그런데 월세는 꼬박꼬박 밀린 적 없는데... 그런 사람이?


형사는 며칠을 미행하고 잠복한 끝에 이 집에 살고 있다는 걸 확신했지만 출입구가 두 곳인 데다 출입문마저 잠겨져 있어 도움을 요청했단다.


형사라니 일단은 믿고, 대신 몇 가지 약속을 받았다.


1. 건물 안에서는 절대로 검거하지 말 것


2. 주변인이 모르게 소리소문 없이 해결할 것


3. 집에 드나들 때는 출입구 문을 꼭 닫아줄 것


4. 범인이 구속되면 해당 호실의 살림은 경찰 책임하에 빼줄 것.


별스럽지 않다며 호기롭게 약속을 하길래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이자 수호자이니 헛소리는 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궁금해서 해당 복도를 cc-tv로 실시간 확인하다가 잠이 들었나? 다음 날 무사히 검거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출입구의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 팽개치고 가버렸네 ㅡㅡㅡ


그 사단 이전에도 툭하면 경찰이라며 cc-tv녹화영상을 보여달라는 연락이 오곤 했다.

때로는 납치범이 이쪽으로 튀었다는 둥, 노상강도가 이쪽으로 왔다는 둥 하면서.


 위치가 삼면 도로에다 아랫길로 나가면 사방이 뚫려있어 도망갈 수 있는 길은 많은데, 인근에 방범 cc-tv가 없으니 연락이 오면 무조건 협조해 줬다.


그날 사기범 사건 이후 난 경찰이라고 해도 시큰둥하게 대한다.

다만 혹시나?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으니 그 시간 대에 출입한 사람을 체크하고, 없다는 정도만 얘기해 준다.

그건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기본인 셈이다.


주변에 기관이 많아 자체 ccㅡtv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이전부터 시청에 몇 번 민원을 넣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예산부족이


범인검거 중 개인에게 묻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래서 차라리 경찰서에서 이 사각지대에 방범 cc-tv 요청을 하는 게 어떠냐고.


경찰이 요청하면 더 잘해줄 거 아니냐며 넌지시 말해봤지만 급한 그때뿐이고 감감무소식이다.


사달이 후 계약서를 쓰기 전, 입주하려는 이의 정보를 부동산에 물어본다. 


직장인인지 자영업자인지 아니면 회사 직원인지. 사회초보생인지 혼자인지 둘인지.






주변 5층 아파트나 연립주택은 명절에 도둑이 들어 결혼패물부터 애들 돌반지까지 모두 잃어버리는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을 때도 다행히 우리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출입구와 복도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실시간 녹화를 확인하고, 카드 키가 없으면 들어올 수 없으니 뒤 따라 은근슬쩍 들어온다면...

충분히 의심을 받을 수 있어 가끔은 동선을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사생활침해라고 항의를 받을까 봐 계약 시 ccㅡtv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사소한 일이 나중 부메랑이 된다는 건 15년간 19번의 소송을 한 끝에 얻은 알량한 정보 중 하나이다.


주변 원룸들과는 가격으로 경쟁하지 않고 신경도 안 쓴다.

비싸게 받아 공실률이 높은 것보다 착한 가격에 좋은 입주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최근 수도세나 공용전기, 계단청소 용역 등 워낙 물가가 올라 10여 년만에 처음으로 관리비를 1만 원을 올린 게 전부다.


살면서 법원과는 엮어진 적이 많지만 경찰서와 엮이게 되고, 그래도 한 때 내 집에 살던 이가 검거된 부분에 대해서는 황당스럽기만 했다. 한 번도 예상 못한 일이라서.


그제야 아! 여긴 여럿이 모여사는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지. 라는걸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편은 전세보증금반환 소송과 지급명령서의 차이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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