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4.21
몇 일 전, 친구와 함께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내 모습이 아닌,
좌절과 합리화로 덮어진 내 모습이 아닌,
'진짜 내 모습'은
삶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되고
상처 받음을 걱정하여 감추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내 마음껏 생각하고 표현하고 말할 수 있었던
어린시절의 어딘가에서 지금의 내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얼마 전 읽은 아홉살의 내가 쓴 '네 인생은 너의 것'이라는 독후감을 읽으며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단단하고 깊었던 아홉살의 나에게
생각지 못한, 더할 나위 없는 큰 위로를 받았다.
얼른 그 곳에 있는 나를 찾고 싶다.
찾아서 말해주고 싶다.
네 인생은 정말로 너의 것이라고. 잊지 말라고.
아주,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다.
*2011.5.20
그저 누군가가 나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서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만해도
반가움과 안도감에 하루를, 반나절을, 단 몇시간을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 날들이었다.
우리모두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서 이곳으로, 그리고 다시 어느 곳으로 오고 갈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다시는 마주치지도, 혹시 스친대도,
언제나 처음 이겠지만, 아니
처음인지도 마지막인지도 영영 알 수는 없겠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날들의 그들 덕분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의 시간에 길을 낼 수 있엇던 날들이었다.
경복궁의 안쪽의 안쪽의 문앞을 서성이던 날들이었다.
*2012.03.15
아무일도,아무런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말로 괜찮았는데.
그래.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그럴수 없을때가있다.
자주다니는 곳곳마다. 모두에겐 일상이지만 나에겐 '사랑'이었던
그 찰나의 순간들이 내게는 오늘 아침일처럼 생생할때.
그때의 내가 행복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때.
한 번 더 돌아갈 수 없음이 너무도 분명할때.
*2015.6.24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오늘만도 수십 번을 내가 내게 되묻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거두어버린다.
그저 조용한 곳에서 나에게만 집중해 나를 위해 한 톨도 아낌없이 시간을 쓰고 싶다.
허공에 날리는 시간 없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의미도 없는 일에 의무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시간 없이.
내일 잠에서 깨 다시 읽었을 때 부끄러울 투정이어도
나는 온통 그 생각 뿐.
그저 차 한잔, 마음을 내려놓고 마시는 일.
마음을 놓아도 되는 시간에 그러한 사람들 곁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일.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오래 머무는 일.
익숙하고도 낯선 밤거리를 끝도 없이 내달리는 일.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일 하고 싶은 건,
내가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내가 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