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칠월,이문동
평소에는 잘 생각나거나 떠오르지 않지만 가끔씩 잘 있는지 안부가 궁금한 기억들이 있다.
비가 내린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몹시 춥다거나 아주 덥다거나
어떤,
노래가 들리거나 익숙한 향이 스칠 때 등등.
비가 오던 요즘의 날에는 정말 오랜만에 불쑥 어느날의 기억
-저녁을 해주겠다는 문자를 읽던 해질무렵의 어둑한 내 방 침대,
장대비가 내리던 버스정류장,
푸른빛 롱스커트를 입고 버스에 타던 내 발 끝,
우산 하나를 나눠쓰고 슈퍼로 향할 때 한 쪽 어깨를 적시던 빗물의 차가움,
스팸과 김 같은 특별할 것 없지만 결국은 오래오래 잊지 못한 저녁 밥,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웃게 했던 이야기-같은 것들이
아직 내 안에 잘 있다며 아는 체를 했는데
내게라도 그 기억이 남아있으니 기특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 붙들고 그 기억 속에 머물러보았다. 언제 또 마주칠지 모르니.
*2014/십이월 구일,계동
웃고있었지만
종일 울었던 날이었다.
바닥을구르는 멍투성이가된 내가
혼자 떨고 있었다.
벌써 그날의 벅참과 기쁨의 전율이
다섯해나지났다는사실이
그리고 오늘 그 날의 그 시간들을
내가 멍투성이가 되는걸 알면서도
내 눈앞에 가져오는건 나라는 사실이
지금 온몸으로 맞고 있는 눈을 흐리게 하는 지금이다.
*2012/유월 이십구일,잠실동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다-라는 생각을
벌써 수년 째 하고 있다는게
어느때는 듬성듬성
또
어느때는 번쩍번쩍
내 마음을 건드린다.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다.라는 말을 가만-히 되뇌어 본다.
처음에는 부족한 나를 탓하고
그 다음에는 되어있지 않는.상황의 답답함에 울먹이고
또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라는 단어를 한참을 곱씹으니 서럽고
몇번을 반복하다 문득.
무언가를 끊임 없이 하고 있고.하려하는 내 맘이 대견하고
아무것도.라는 단어에서 멈추어있지 않음.이라는 문장이 떠올라
다행이다.기대된다.로 매듭지어진다.
그래.그래서 이렇게 오늘을 또.
나를 또.
어딘가로 데려가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