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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Nov 24. 2024

#14.영수증들(1)

2012년 8월,9월

*2012/팔월 이십칠일/ 광화문 오향족발

여름날의 끝자락.

하루종일 솜뭉치 같았던 몸과 휘청거리던 마음을

신발 끝에 매달고 471버스에 올라타

한남동 전망대카페에서 내릴까 말까 고민하다

익숙한 그곳에서 내려 문득.

이모와 부암동에서 박노해 전시회를 보고 차를 마신다는 엄마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엄마에게 맛있는 무언가를 저녁으로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산돈까스를 살까. 하라도넛을 살까. 마마스를 살까-하다

습하지만 그 바람도 바람이라 바로 버스를 타긴 아쉬워 광화문까지 걸어가기로.

광화문엔 뭐가있지-하다 이야기로만 듣던 오향족발. 

엄마는 족발을 참 좋아하는데.

맞아.

언제먹었더라.

난 여섯달 전 쯤 공덕에서 먹었는데.

엄마는 언제 먹었더라.

아.

이래서 나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세종문화회관 뒷쪽. 내가 자주 가는 그 길 위 오향족발이 있다는

아케이드에 들어갔는데 오른쪽인지,왼쪽인지, 그리고 왜이리 여긴 조용하고 휑한지. 

징크스라 칭하기엔 거추장스럽지만 거의 구십프로의 경우는

내가 오른쪽을 선택하면 왼쪽 바로 옆에, 왼쪽을 선택하면 오른쪽 바로 옆에 내 목적지가 있다.

그래. 오늘도 역시. 왼쪽으로 빙빙돌아 결국 아케이드 입구 오른쪽에 있던.

그곳만 복작거리는 자그마한 이곳. 

각자의 사연을 한아름 안고 이곳을 찾았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니 괜시리 짠하다.

그렇지만

너무 바빠 일행 없이 덩그러니 혼자 서있는 내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으시는 종업원분들의 눈길을 기다리는

나도. 짠하다. 

나름 적극적으로 가게에 두 번 정도 들어가보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지나가실 때마다 붙잡아보지만 아직 한참은 더 해야하는지. 괜시리 서럽다. 

겨우 주문을 하고 20분을 더 기다려 미안하다는 아주머니의 서비스 콜라와 묵직한 족발을 받아들고.

뭐가 좋다고 또 히히 한다. 

가방도 족발도무겁고.비가오려하는 저녁시간.

순간이동으로 엄마에게 족발을 슝-가져다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40분이 지나 집에 도착해 열기가 식어가는 족발을

뭐가 그리 뿌듯한지 척.하고 식탁에 내려놓는다.

오늘의 내가, 이날의 내가, 그래도 살았다는.

살아서 무언가를 했다는 증거를 엄마에게 보여주려는 듯 자뭇 당당한척한다. 

분명 먼 훗날의 언젠가.

이날을, 비를 맞고 족발을 사와 엄마와 함께 먹었던 이날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날이 올테지.

괜시리 목이 메도록 입을 한껏 벌린다. 

엄마와 얼른 여행을 가야겠다고 다짐한 저녁이다.

없어지지는 않을 기억이 된 저녁이다. 



*2012/구월 오일/ 마마스(시청)

늦여름과 초가을. 


여름의 여운을 담고 '진짜'가을을 기다리는 가장 좋은 시기. 

가장 좋아하는 시기. 


복숭아쥬우스-한잔을 손끝에 달랑달랑-매달고선 

메말랐던 몸과 마음을 달큰하게 적실 수 있어 

참 좋다-라고 생각하다 


네게는. 내가 네게 있던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니었을지라도 

내게는. 네가 그럼에도불구하고. 네가 내게 있던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기였었어-라고 가만히 내뱉는다. 


그 시기가 내게는 서러웠던 지난 사랑의 여운을 담고'진짜' 오래오래 영원히 함께하기를 기다릴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시기였었지- 




*2012/구월 십일/ 나폴레옹과자점

빵.빵.빵.이 재미있다.

구입한 것들은 초코빵.단팥빵.크림빵.이었지만 

그래. 이것들은 모두 빵.인것이지.

빵이기 때문에 단팥빵이 될 수도. 초코빵이 될 수도. 크림빵이 될 수도 있는것이지.

그럼.

난?

과연 내가 정말로 사람.이어서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는데 거리낌이 없을 수 있을까.


*2012/구월 이십오일/ 명동역 물품보관함 

보관함을 적어도 일년에 한번씩은 이용해왔다는 사실을 이날 문득 깨달았다. 

뜻하지 않게 받게된 추석선물인 '스팸'한상자를 들고 명동역으로 가 보관함을 여닫다.

그래. 보관함에 관한 몇가지. 


#과외를 하게 된 후 엄마 몰래 큰맘먹고 산 옷이나 신발 등을 불가피하게 잘 숨기지 못할때. 

예를 들면 쇼핑백을 넣을만큼 큰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다거나 

엄마가 내 예상보다 집에 빨리 도착했다거나 하는 날.

그런날에는 동네 지하철 역에 옷을 잠깐 넣어놓고 다음 날 다시 그 아이들을 찾곤 했었다.   

그래놓고서는 며칠씩 잊고 찾아가지 않은 적도 있고.  

참. 쓸데없이 철없이 중요한게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그래도 그립네. 


#또 어느 해 겨울에는 생일을 맞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케이크와 선물을 들키지 않으려 

을지로입구역 보관함에 넣어두고 

그날 따라 꼬인 약속들때문에 밤늦게 을지로로 돌아와 케이크와 선물을 낑낑 둘러메고_ 

그래도 결국 열두시 전에 무사히 케이크도 선물도 모두 짜쟌-! 하고 전해줄 수 있었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그날이 생생하네 그러고보니.  

내게는 아직도 남아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흔적조차 없을수도 있는 일들을

이렇게 마주하는 순간이란_ 그래도 그립네. 그떄의 나와 우리.


#카페나 도서관에 앉아 무언가에 몰두해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야심차게 들고 온 노트북.

갑자기 잡힌 친구와의 약속에 노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턱-하고 또 어딘가의 보관함에 넣어버리고. 

그래서 대체 내가 어디 보관함에 넣었는지 가끔 잊어버리기도. 


정독도서관 열람실에 있는 무료 보관함은 굉장히 긴 직사각형 초록색의(예전에 너무도 많이 쓰였던)

열쇠로 찰칵. 잠그고 여는 형태였었다. 찰칵-하는 열쇠소리가 날 때마다 조용한 열람실에서 어쩐지 나 혼자만

놀러나가는 것 같아, 공부를 먼저 그만두는 것 같아 부끄러워져 

괜시리 서두르다 열쇠를 떨어뜨려 더 주목받거나, 

책상에 그대로 놓아두고 빈몸으로 털털거리며 나온적도. 


참.많은 곳에. 내가 지나온 흔적이. 묻어놓은 기억이. 숨겨놓은 시간들이 아직도 잘.있다는 사실에  

바람부는 가을. 이리도 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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