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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Oct 27. 2024

#10.정릉

*팔월

여름날의 끝자락.

온종일 솜뭉치 같았던 몸과 휘청거리던 마음을 신발 끝에 매달고 471번 버스에 올라타 

한남동 전망대카페 정류장에서 내릴까 말까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치고는

시청 앞에 내리는데 문득 부암동에서 박노해 작가의 전시회를 보고 차를 마신다는 엄마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엄마에게 맛있는 무언가를 저녁으로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산돈까스를 살까, 하라도넛을 살까, 마마스 샌드위치를 살까

광화문까지 걷는 내내 돌림판을 돌리다 

아.엄마는 족발을 참 좋아하는데!

언제 먹었더라.

난 두 달 전 쯤 공덕에서 먹었는데 엄마는 언제 먹었더라. 

아...


오래된 빌딩의 아케이드에 들어서 

고민 끝에 왼쪽 방향으로 꺾고 결국 한 바퀴를 돈 뒤 만난 작은 족발집 앞에서 

각자의 사연을 한아름 안고 이곳을 찾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괜시리 짠하다. 

내가 뭐라고.


삼십분을 기다려 족발과 서비스 콜라를 받아드니 왜인지 웃음이 배어 나온다. 

갑자기 내린 비를 맞은데다, 오늘따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열기가 식은 족발을 

뭐가 그리 뿌듯한지 척-하고 식탁에 내려놓는다.

자뭇 당당하게 한껏 뽐을 내며.

이게 뭐라고. 

분명 먼 훗날의 언젠가

이 날을,

비를 맞고 족발을 사와 엄마와 함께 먹었던 이 날을

사무치게 그리워 할 날이 올테지

괜시리 목이 메어 입을 한껏 벌려 족발을 와구와구 먹어본다. 


없어지지는 않을 기억이 된 어느 여름 저녁.


*사월

결국 돌고 돌아 여전히 제자리인 것이 절망스러워 

어디가 어떻게 라고도 말할 수 없이 아프다. 

아직도 이렇게 나만. 이렇게 이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도,

겨우겨우 보이지 않는 저 끝까지 갔다 결국 결승점 문턱에서 

그 어느때보다 빠른 속도로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그리고 이 모든 걸 혼자 끌어안고 긴 시간을 버텨온 내가 

밉고 안쓰럽고 가엽다.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아도 결국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걸 안다.

알고 있음에도,

무뎌지고 초월할 때도 되었을 법한,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일들이

아직도 이렇게 왕왕 내 눈과 맘과 머리를 가릴 때에는 

나와 나의 삶에 대한 원망이 곤두선다. 


"잘 하고 있어"라는 말은 그래서 내게는 버겁다.

얼마나 더, 계속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계속, 잘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결국엔 끝이 나지 않는다면, 

아니 그래서 끝이 난다면

그 다음에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칠월

내가 자주 말하는 몇가지 단어와 문장을 떠올리다가 

‘안녕-‘의 빈도가 꽤 높다는 걸 알았는데

곰곰이 들여다보니

‘안녕’ 한다는 것이 말처럼, 내뱉는 횟수만큼 쉽지 않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정하고 따뜻하고 아쉽고 슬프면서도 담백하고 귀여운, 그리고 아픈.


만남과 이별을 모두 함께하는 ‘안녕’ 이라는 두 글자. 

이 두 글자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마음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매일 보는 나무와 꽃과 바람에도.

내 곁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오늘 처음 만나 아직은 낯선 기운이 감도는 어느 것에 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안녕이라는 말.


‘안녕’ 하냐고 ‘안녕’ 하라고.


누군가 내게 안녕.하냐고 물어 주었을 때 

응 안녕해! 고민하지 않고 말할 날이 올까-

두고두고 오래 보고 싶은 누군가에게 

다시는 보지 못할 ‘안녕’ 을 하지 않는 날이 곧 올까.


*칠월

좋아하는-이라는 말은 참 신기하죠.

평범해 보이는, 나하곤 상관없어 보이는, 관심없었던, 

혹은 싫어했던 

어떤 말, 단어, 문장, 공간, 사람을

소중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좋아하는' 비가 흩뿌리는 날씨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는 여름의 한낮

'좋아하는' 책을 읽는 버스정류장

'좋아하는' 티비프로그램이 하는 월요일

'좋아하는' 바다를 보며 앉아있기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오월

어떤,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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