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에 알게 된 커피맛 - 마법작가 님의 글입니다.
내가 처음 커피를 맛본 것은 열한 살 무렵이다. 믹스커피를 즐겨 마시던 엄마가 아주 너그럽게 나도 한 번 맛볼 기회를 주신 기억이 난다. 어린 나이에 느낀 그 달콤함이란! 이후 거의 십 년 넘게 나에게 커피는 곧 믹스커피였다. 그 무렵 별다방을 필두로 커피 체인점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 커피는 믹스커피였기 때문에 아메리카노는 쓰기만 할 뿐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당최 느끼지 못했다. 내 입맛에는 믹스커피와 가장 가까운 캐러멜 마키아토가 제일 맛있었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한다더니 어느 순간 캐러멜 마키아토의 달콤함이 부담스러운 순간이 왔다. 그래서 내 커피 여정은 바닐라 카페라테로 옮겨갔고 이후에는 바닐라 시럽마저 뺀 카페라테까지 왔다. 지금은 슬프게도 카페라테의 우유 맛까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 달콤한 디저트를 곁들일 때는 아메리카노를 찾게 된다. 당이 당길 때 필요한 도넛, 스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터리한 크로와상과 함께 하기에 라테는 좀 부대낄 때가 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내 커피 여정은 카페 메뉴의 디폴트 값인 아메리카노까지 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그 맛도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는데, 나는 고소하다 못해 구수한 맛을 좋아하고 산미나 쓴맛을 즐겨하지 않는다. 회사 복지 프로그램으로 경험한 바리스타 수업에서 배운 바로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가 산미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이름이 들어간 커피는 피해 간다. 고소한 맛으로 안전한 선택지는 콜롬비아 같은 남미산 커피이다.
이 정도 오면 다음 단계는 드립 커피이다. 원두를 사서 직접 갈고 핸드 드립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그동안 좀처럼 이런 여유를 부리지 못했다. 원두의 신선함을 유지해 가며 꾸준하게 마실 자신도, 아침마다 갈고 내리고 씻을 자신도 없었다. 핸드 드립 도구는 유명 카페에 갈 때마다 들었다 놨다 했고 초록창 쇼핑몰 장바구니에 몇 번이나 담긴 후 사라지곤 했다.
그러던 내가 핸드 드립을 하는 순간이 왔다. 하와이에서 일 년간 살게 되었는데 코나 커피는 하와이에서만 생산되니 그 희소성에 혹할 수밖에. 비록 코나 커피의 산미는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비싸게 파는 코나 100% 원두를 맛보려는 유혹에 넘어갔다. 제대로 한번 맛보자는 생각에 손으로 딴 최고급 코나 100% 원두를 샀는데 그 영롱한 빛깔과 향은 잊을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결국 종이 필터 낭비를 줄이기 위해 스테인리스 재료로 된 드리퍼와, 전압이 다른 한국에서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수동 그라인더를 들이게 됐다.
어느 날 미식가인 미군 친구를 따라 군부대 PX에 갔다가 맛이 정말 좋다는 분쇄커피를 추천받았다. 한참 핸드 드립을 즐기던 중이라 기꺼이 맛보고자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에스프레소용 분쇄커피였다. ‘커피를 내려 마신다’는 개념에서 커피 분쇄 굵기에 차이가 있는 걸 몰랐던 것이다. 분쇄도는 핸드 드립용이 가장 굵고 에스프레소용이 가장 가늘다. 그래서 나는 멋모르고 산 그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그마한 휴대용 수동 에스프레소까지 입문하게 되었다.
에스프레소는 뜨거운 온도에서 압력을 가해 내린 커피가 특징인데, 농도가 진해서 주로 물을 섞어 마신다. 그 원액을 마신 경험은 이탈리아에서 딱 한 번 있다. 이탈리아에서 기본 커피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에스프레소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커피=믹스커피 시절이라 경악했지만, 그 맛은 나쁘지 않았다. 으스스한 가을날 로마에서 베니스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몸을 데우려고 마신 에스프레소는 아직까지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그 에스프레소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한국인에게 커피는 현대판 숭늉이며 카페는 현대판 사랑방이라고 한다. 나에게도 커피는 집중을 요할 때 쓰는 각성제를 넘어 아침 식사를 돕는 마실 거리이자 나를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환대 도구가 되었다. 인위적 각성, 이뇨 작용으로 인한 수분 배출, 수면 방해, 치아 변색이나 부식 등 단점도 있다고 하지만 과유불급의 선만 잘 지킨다면 나의 커피 여정은 계속될 것 같다.
작가 소개가 계속됩니다....
마법작가 님을 만난 건 작년 10월 즈음이었어요. 뉴아티 북클럽에서 <아티스트 웨이> 글쓰기 워크숍을 하면서 만났습니다. 마법작가 님이 쓰신 첫 글을 읽었을 때, "와, 글을 정말 잘 쓰신다. 이미 작가님이신데 아티 책을 읽고 싶어서 오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 저녁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마법작가 님과 한 시간 가까이 차 안에서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하와이에 계셔서 노르웨이가 이른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통화를 할 수 있었어요. 저는 마법작가 님께서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지 여쭤봤어요. 신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알려드리는 것도 저의 보람이지만,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친구가 되어 드리는 것도 저의 소망이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마법작가님은 워크숍이 시작되고 한 달 남짓만에 바로 브런치 작가가 되셨습니다. 그 후로도 아티 여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마법작가 님과 함께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쓰며 지내고 싶어요.
마법작가 님과 마법 작가님의 브런치를 소개합니다.
# 마법作가
생기 넣고 글 짓는 마법사. 읽는 분의 마음이 살아나는 마법을 부리고 싶어요. 번역을 했고, 칼럼을 썼고, 에세이를 씁니다. 매년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한 번 시작한 일은 계속하려고 해요. 꽃과 책과 그림을 좋아하고 요가와 수영과 등산을 합니다. 베이킹과 자수와 뜨개질과 세일링을 하고 싶어요.
https://brunch.co.kr/@wizard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