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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Feb 24. 2024

Caffé Americano

영동나나

난 커피 맛을 모른다. 하지만 커피의 고소한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든다. 특히 다른 사람이 마시는 커피의 냄새는 나를 자극한다. 내가 커피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니 60년 전이다. 집으로 미제 장사 아줌마가 큰 보따리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왔었다. 그분이 펼쳐놓은 미군용 담요 위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장군 버터라고 선이 그어진 넓적한 버터, C 레이션 박스, 올리브유, TANG 가루, 빨간색 커피 병 등이 있었다.


그중에 빨간 뚜껑의 커피를 소개하며 미국 사람들이 마시는 고급 음료라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던 것을 기억한다. 같이 살던 도우미 언니가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부엌에서 커피를 타서 우리 어머니 몰래 마시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언니는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한가득 커피를 타서 자주 마셨다. 어린 나는 커피를 마시지는 못하고 언니나 어머니 옆에서 맡았던 커피 냄새가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새콤한 듯 고소한 냄새였다.


나의 모닝커피는 남편이 내려주는 드립커피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으면 남편은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먼 산을 쳐다보며 천천히 갈고 있다. 집 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오늘 날씨가 흐리네, 오늘은 날씨가 추워”라고 말하며 창밖을 보면서 날씨 정보를 전한다.


아침 식사를 마칠 때쯤이면 뜨거운 물을 부어 놓았던 컵의 물을 버리고 드리퍼로 모인 커피를 내 잔에 부어준다. 나는 고맙다고 간단히 말하고 커피잔을 두 손으로 잡는다. 커피를 마시면서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커피를 더 넣었으면 좋겠어.”라고 부탁한다. 그다음 날은 “커피가 너무 진한데…. 원두가 많이 들어간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러면 남편은 “그래? 내일은 덜 넣어야겠네”라고 대답한다.


나는 커피 맛을 잘 모르면서  남편에게 자주 투정한다. 나도 안다. 남편이 내 속 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어떤 날 진한 커피가 좋고 어느 날은 연한 커피가 맘에 드는지 말이다. 나는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가끔 화를 낸다. 결혼하고 40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나를 몰라준다고 투정하고 왜 그걸 모르느냐고 하며 화를 냈었다.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사과도 없이 평소와 똑같이 대하고 지낸다.


얼마 전 “커피가 너무 진해”라고 말했더니 “그럼 아메리카노로 마실래?”라고 한다. “응? 무슨 소리지? 이렇게 할 수도 있다고?” 나는 놀라서 얼떨결에 “그거 좋지”라고 대답하고는 뜨거운 물을 내 잔에 받아 완벽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셨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 남편은 노력하고 있었나보다. 어찌 커피뿐이겠는가. 나는 어느 날은 커피 향만 맡고 싶고 어떤 날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오늘 같은 날은 거품이 가득하고 달콤한 카푸치노를 마시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마시고 싶은 커피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거의 없다. 남편도 기분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가 원하는 커피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남편의 취향을 맞춰 준 적이 거의 없다. 한 번도 “당신은 어때?”라고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남편은 40년 동안 살면서 커피 취향만큼 다양한 내 마음을 감당해 주었다. 이제부터는 남편이 주는 커피를 감사히 마시고, 아니 남편이 원하는 커피를 마셔야겠다. 너무 늦었나?







글을 쓰고 싶어서 모였습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함께 꾸준히 씁니다. 우리 안의 아름다움과 창조성을 발견하고, 하나씩 해내다 보면 우리 모두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진심과 솔직함을 담아 쓴 글을 정성스럽게 묶었습니다.


영동나나 : 디자인이 맘에 들면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을 택하고, 순발력과 적응력이 강해서 어디서든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선택했는데 내 속의 어린아이와 숨바꼭질 중입니다. 앞으로 깊이 있는 생각과 행동을 가진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영동나나 작가님 브런치를 소개합니다.

https://brunch.co.kr/@yjk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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