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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by 루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참 많은 것들은

<오만과 편견>이라는 패러다임의 접전을 자주 경험한다.'



-패러다임(Paradigm)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거 좋아해?"


캐나다에 도착해 이 곳 사람들이 장을 보는 곳인"Grocery Store(그로셔리 스토어, 한국으로 치자면 대형 슈퍼마켓 정도 되겠네요!)"에 처음 제이와 함께 나갔다. (십 년 전 얘기예요!) 그는 올리브 오일에 절여 담긴 '추석에나 볼 수 있을 법한 토실한 왕 대추 사이즈'의 올리브를 가리키며 물었다.



올리브.


캐나다에 오기 전만 해도 피자에 몇 조각 올리던 까만 올리브가 다인 줄 알았지,


까만 것도 있고 안 익은 대추같이 옅은 초록색을 띠는 것도 있고,

안에 씨를 발라내어 식초와 향신료로 넣어 담가서도 먹고,

발라낸 씨를 대신해 다른 야채를 집어넣어 피클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정제해 그 귀하고 좋다는 기름(올리브 오일)을 짜내 쓰기도 하고,

미용에도 쓰이고 팩 하는 데도 쓰이고, 건강에도 좋고

심지어는 성경책에 나오는 '감람나무'가 올리브인 줄은 전엔 몰랐었다.



"글쎄...." 하고 말하니 우리 둘을 지켜보던 그 코너의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집게로 통통한 연두색 올리브를 하나 집어 올리며 물었다.

"한 번 먹어볼래요?"


맛은 형편없었다. '맛있네요'하는 눈길을 올리브를 집어준 아주머니에게 보냈지만 사실 그녀가 나를 마치 아시아 여자를 처음 본 것 마냥 쳐다보고 있지만 않는다면 냅다 뱉고 싶을 정도였다. 익숙하지 않은 맛. 게다가 한 입 물었을 때 찐하게 나는 그 올리브 향과 뒷 맛, 그리고 그 시큼, 떨떠름한 맛에 잔뜩 실망했던 내가 이 곳,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은 그 때로부터 거의 십 년.

절인 올리브라면 와인 한 잔에도 먹고 아침 공복의 허한 빈 속에도 먹고, 오후 늦게 크래커와 치즈와 함께 즐겨먹을 정도로 무지한 편견에 쌓여있던 과거에서 나는 입 맛의 지대한 발전을 이루어 냈다.





사랑해도 참아야 하고, 원해도 가질 수 없고, 행복하고 싶어도 불행하고, 아무리 희망해봐도 이뤄지지 않는 더러운 '현실 같은 모순'같은 것들은 아마 시대와 사람과 공간을 넘어 모든 곳에,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진짜 현실'일지 모르겠다.




한국과 캐나다는 시차가 열네 시간이나 난다.

한 마디로 한국이 밤이면 캐나다는 낮이고, 캐나다가 밤이면 한국은 낮이다. 한국이 빠른 시간에 있다.


요새는 유난히 다음 날 아침에 보게 되는 밤새 업데이트된 한국의 페이스북 뉴스가 두렵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데...........'라고 생각하지만 매일 아침 놀랍게도 나는 '더 있는 뉴스'에 마음이 감옥 안에 들어앉은 것 마냥 갑갑, 해져 온다.



오만과 편견은 영어로 Pride and Prejudice라고 한다.

Pride라는 것은 직역하자면 '자부심, 자존심, 자부, 정상'이라는 뜻이고 Prejudice라는 것은 '편견, 침해, 권리 혹은 이익 따위를 해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의 삶과, 삶을 구성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은 늘 오만과 편견의 묘한 경계선에서 투쟁한다.


야당과 여당이 그렇고

구세대와 신세대가 그렇고

보수와 진보가 그렇고

과거와 현재가 그렇고

사상과 종교가, 과학이 그렇고

감성과 이성의 다툼이 그렇고

추억과 현실이 그렇고

이상과 지금이라는 시간이 그렇고

내가 그리는 나와 현실의 내가 그렇다.



난 사실 어쩌다 지금 우리가,

지금 닥친 현실을 맞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하얀 화선지에 글 한 자 써 보지 못하고 튄 크고 진한 먹물을 보고 있는 듯 하다.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에 오만과 편견의 미래를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말의 한 마디 중 하나는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로는 Although,

Eventhough,

Nonetheless,

In spite of it,

In the tooth of it,

Despite,

However,

anyway 정도가 있는데

기본적인 뜻은 '무엇, 무엇함에도 불구하고 <이겨낸다>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우리의 현재는 미래를 함축하지 않는다.

우리의 현재는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다, 개선될 것이다, 좋아질 것이다, 발전될 것이다,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라는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든다. (특히, 매일 아침, 실망스러운 뉴스만 보게 되는 요새 뉴스에 더더욱 위축되지만...) 정직한 것, 정의로운 것, 정상스러운 것, 긍정적인 것, 아름다운 것이 부정적인 것인 보다 많은 시기, 시대를 원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마 오늘이나 미래의 현실에서나 같은 것이다.




I'm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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