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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 Well

by 루나



초등학교 5학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고 한동안 좀처럼 갈 수 없었던 교회를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다니던 교회에는 내 어릴 적 불행들이 시작하기 바로 전, 초등학교 3,4학년 때 내 학년을 담당하던 이십 대 초반의 젊고 신앙과 열정이 넘쳐나던, 그리고 나를 아주 예뻐해 주던 '(교회 선생님), Y'라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은 당시 개인 사정으로 인해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었음에도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전해 듣고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하지만 밥이나 한 끼 먹여주겠거려니.. 하는 마음으로 만난 선생님은 나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녀는 당시 고작 스물넷, 다섯.

게다가 미혼.

그런데 그녀가 나를 입양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부모가 없으니 '고아'이긴 했지만 아직은 정정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이십 대 중반의 '같은 교회에 다니던 이십 대 중반의 미혼인 그것도 남인 여자에게 입양을 보낼 리도 없었고, 솔직히 한국 입양법에 대하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미 12살이나 된 아이를 이십 대 초반의 미혼 여자에게 입양을 보내는 것은 개방적인 외국과 입양에 관대한 외국에서라도 조금은 생소한 얘기인 것 같으니 이십 년 전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선생님은 얼마나 입양에 대해 신중하고 깊게 알아봤는지는에 대해 난 잘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나를 입양해 키워주는 대신에 자신이 미래에 선교를 하는 데 있어 내가 유력한 조력자가 될 것을 물어왔다.


사실 그땐 누군가 나를 '입양'까지 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의지가 충격에 가까웠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하나만의 충격으로도 너덜너덜해진 멘털에 그녀가 설명하는 입양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불쌍한 처지에 빠진 나를 키워주는 것을 보답하기 위해 난 그녀의 선교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조건은 터무니 없이 무서웠다.


'싫다'는 말을 해야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선생님의 두 눈을 보고 똑똑하게 직접적으로 얘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말이다. 그리고 아마 그렇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하지만 그때 나는 몇 가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첫 번째, 나는 '노(No)'라는 말을 지독하게 못 했다. 그것은 예스(Yes)보다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사회에 가끔은 잘 용납되지 않는 '부모 없는 아이'라는 평균과 기대치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조금은 입 밖에 내기가 늘 신중했던, '힘든 말'이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 그녀는 내게 그간 나에게 잘 못 한 번 한 적 없고, 늘 나의 풍선을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밑에서 적당히 바람도 불어주고 모난 것은 치워줄 줄 알았던 '좋은 사람'으로 분류되어 그녀에게 '이건 아니에요.'라고 말함으로써 그녀가 제시한 입양이라라는 것은 어쨌든 불행한 나를 위해 한 생각이었음은 분명했으니 그녀를 다소 실망시킬 수 있는 부정의 말의 무게가 컸기 때문에


도저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어 아주 긴 장문의 편지를 구구절절이 써 선생님에게 우편으로 보냈던 것 같다.


편지의 이야기는 이래저래 해서 노,였다.


그리고 이 얘기를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했더니 할머니는 부모 없다고 불쌍하게 봤으면 봤지 지가 뭔데 아이를 지 선교하는데 쓴다 어쩐다 한마디로 ㅈㄹ을 전화로 늘어놓으셨더랬다.


이후 나를 입양까지 하겠다던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이 이야기는 웃픈 에피소드가 되었다.




아줌마가 되서일까,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걸까.. 아님 그냥 나이가 들어 그런 걸까.

여하튼 지금은 '노'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노'를 '노'라고 말하는 것이 굳이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반갑고, 부정의 의견을 내놓아도 '너의 의견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쿨하게 받아들여주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세(캐나다요)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사실 싫어요, 아니에요, 라는 말을 쉽게,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닌가?) 하두 착한 사람들 우려먹는 나쁜 인간들이 많아 눈치껏 싫어요, 안돼요 하긴 하지만 그래도 죽어가고 있는 위급한 상황의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상황에 외면하는 인간보다는 도우려는 사람들이 아직까진 이 세상에 더 많을 거라고 믿고 살고 있는데. (롸잇? Right?)


영어에서는 '노'라고 말해야 할 때 '고맙지만(Thank you)'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No, Thank you."

-미안한데 안 되겠어, 미안한데 그건 아닌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정중한 거절을 정중히 받아들이는 것도 매너.


되려 싫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은 대중의 호구가 되는 것 같은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서,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는 어렵지 않게 싫으면 싫다, 아니면 아니 다를 표현한다.


어렸을 때 이런 모습을 가진 당당해 빠진 나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Express,

And Express Well.


표현하자.

잘, 표현하자.




We all nee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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