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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수난시대-3

렌터카로 프랑스 훑기

by 임경희 Sep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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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은 고흐드란 마을에 갔다가, 프로방스의 중심도시인 아비뇽으로 내려가는 날이다.

모처럼 순조롭게 도착한 고흐드는 바위산 위에 돌로 지어진 작은 중세마을이다.

고불고불 작은 골목길을 따라 오르막내리막길을 걸으니  마치 동화 속의 여왕 같았다.. 면 조금 염치없고,  뭐 무수리라도 좋을 듯  행복해진다.   


프랑스인들이 살고 싶은 마을 1위로 뽑혔다는 게 충분히 이해될 만큼  아기자기한 마을 고흐드와 두 시간 만에 아쉽게 안녕하고 아비뇽호텔로 가기  위해 네비에 주소를 입력한다.

그러나 가엾은 프랑스의 젊은이가 세 명씩이나  김치 냄새 진동하는 우리 차로 불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호텔 번지가 네비에 입력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500m 부근의 대학교를 입력하고 일단 출발한다. 호텔 전화번호는 있어봤자 말이 안 통하니 무용지물이다.  미리 사진으로 익혀 둔 대학교와 호텔 모습을 더듬어 30분을 헤맨 끝에 겨우  호텔에 도착, 짐을 던져놓 아비뇽 도심으로 걸어 나가니 벌써 7시가 되어간다.  


   

패키지여행의 단점이 하루 종일 버스로 달려가서  한 군데 보며 사진 찍고 이동,  또 이동.

이런 게 싫어서 자유여행을 고집했는데 너무 욕심을 내니, 이건 뭐 패키지보다 더 강행군이다. 더군다나 이동 중에 휴게실에 들러,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으며 다니니, 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프랑스 고속도로 휴게실엔 대부분 숲 속에 벤치가 있어 김치 냄새 신경 안 쓰고 점심 먹으며 다니긴 참 좋다. 그러다 보니, 다음 예정지에 늦게야 도착하게 되어, 느긋하게 도시를 즐길 시간이 없어서 늘 목이 다.     



13C 로마 가톨릭의 교황청의 자리가 옮겨진, 아비뇽유슈로 유명한 아비뇽도 역시, 네 시간 정도 돌아보기엔 너무 아까운 도시다.  견고한 성으로 둘러싸인 아비뇽은 중세 교황의 도시로,     남아 있는 역사 유적들은 도시의 화려했던 옛 순간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웅장한 고딕양식의 교황청에 은은한 조명이 더 해지니,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 어쩐지 그 앞 카페에서 맥주라도 한잔 마셔줘야 할 것 같아, 모처럼 제대로 갖춘 식탁, 의자에 앉아 서빙을 받는다. 무수리에서 한 계단 신분이 상승된 듯,  한껏 우쭐해진다.     



다시 새 날이 밝았고,  이젠 남부에 진입했겠다,   본격적인 남불 여행을 위해 그 유명한 코르 땃쥐 해변을 드라이브하며 니스로 가는 날이다. 이동 시간도 그리 길지 않으니 별 어려움 없이 모든 일정이 순조로울 것만 같아 룰루랄라 길을 나선다.


하지만.


편한 이동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마법에라도 걸렸는지  아비뇽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연료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시내에서 주유해야 한다는 어제의 운전자말을 모두 잊었던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고속도로에 곧 진입할 것이고, 고속도로에는 주유소가 자주 있으니 걱정 말자며 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고속도로는 나오지 않고, 어쩐지 목적지와는 반대로 가는 것 같다. 네비가 또 심통을 부리기 시작한다.  끝없는 목초지가 나오고, 이름 모를 꽃들은 흐드러졌건만, 어디에도 주유소는 없을 것 같은 한적한 시골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고등은 점점 더 수위를 높여 반짝인다.

그때까지 웃고 떠들던 목소리는 다 사그라지고,  

운전하는 친구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다.


갑자기 차가 서 버린다고?  그럼  이 허허벌판에서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까?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어 모두 침통하고 

모든 건물이 주유소로 보이는 등, 조바심이 극에 달한다.  조금이나마 무게를 줄여 줄 것 같아, 반쯤 엉덩이를 들고 달리던 중,  정말 기적처럼 주유소가 나타나 주었다.


하루쯤  마음 졸이지 않고 지나가 주면... 안 되겠니?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다. 네비의 심술 때문에 돌고 돌아 어렵게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프랑스 남북의 지도와 큰 도시의 이름은 대충 외우고 갔기 때문에 일단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이정표대로 가면 되니까 오히려 큰 문제가 없다.

차에 장착된 네비가 제 구실을 못하니, 핸드폰의 구글 네비와 함께 보는데, 문제는 배터리다. 배터리 소모량이 엄청나서 꼭 중요할 때 전원이 꺼져 버리는 것이다. 짐 싸면서 차량용 잭을 챙겼다가 도로 빼놓고 온 것이 실수였다.  그 후에 차량용 잭을 사려고 또 얼마나 헤맸는지..     


힘겹게 찾아간 코르 땃쥐 해변은 명성대로 환상적이다.  외국의 웬만한 해변도로는 우리나라 동해안 7번 국도만 못 하다고 콧방귀를 뀌었는데,  과연 이곳은 압권이다.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해변을 차를 몰고 달리는 기분은 유쾌, 상쾌하기만 하여서, 힘든 일 금방 잊기 선수권자들의 집단인 우리는 모두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덥다며 에어컨을 켰는데 이것저것 다 눌러봐도 찬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이건 또 뭐니?  그 후, 에어컨 때문에  수많은 남성이 불려왔지만, 결국 에어컨 가스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32도를 웃도는 남프랑스를 에어컨 없이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때쯤부터 갑자기 조수석 시트의 열선이 작동되기 시작한다.  고속도로에선 차가 흔들린다고 꼼짝없이 창문을 다 닫아야 했는데, 에어컨 대신 히터가 나오는 상황이니 조수석에 앉는 사람은 완전히 찜질방에 앉아 땀으로 목욕하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연방 땀을 아 내는 그 모습이 너무 웃긴다고 육순의 소녀들은 또 깔깔깔.

잘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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