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기말고사 첫 번째 날
아들은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고 나에게 사죄했고
(평생 남자에게 무릎 꿇는 거 첨 당함)
마지막날엔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이가 내민 폰에서는 낯선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생 남자에게 음성편지 첨 받음)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중2친구 철민이에요.
중2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너무 야단치지 말아 주세요"
아들 친구의 우정 어린 멘트에 어이가 없어서 웃긴 했지만 내가 웃는 건 웃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날 시험점수는 앞서서 놀란 점수보다 더 처참했기에..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냐며 앞으로는 미리미리 열심히 공부하기로 약속하고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며칠 후 심적인 충격이 컸던 탓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감기가 옮아서인지 나는 3일 동안 몸져누웠다.
목이 붓고 물도 삼키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끝없이 잠이 쏟아졌다. 병원을 갈 기운도 없어서 그냥 계속 잠만 잤다.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내공이 있다 스스로 믿고 있었는데,
고작 아들의 기말고사 점수 하나 때문에 심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다니...
컨디션을 회복한 후 나는 중2를 평범한 고등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중2의 미래는 중2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나는 나의 삶을 살기로....
그렇게 7월의 여름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며칠 전
움파둠파 흥겨운 벨소리에 전화를 받았다
논술선생님이셨다. 그룹으로 논술과외를 받은 지 1년 반쯤 되었는데 엄격하고 바른말만 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이다.
"어머니. 국어는 만점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과목 점수는 어땠나요?"
나는 참았던 서러움을 쏟아냈다.
선생님! 아이가 하필 시험직전부터 아팠다. 그 자식은 벼락치기할 계획이었을 테니 당연히 암기과목 전부 망쳤다. 사필귀정, 인과응보가 아니겠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얘는 글러먹은 것 같다.
차분히 내 얘길 들으시던 선생님은
"어머니 그러니깐 그 아픈 와중에도 국영수과 주요 과목은 다 잘 봤다는 거죠?
"그렇긴 한데요. 쓰앵님!! 암기과목을 다 망쳤어요. 폭망요! 폭망!! 다른 애들 4주 전부터 기말준비했대요. 걔들 암기과목 다 만점 받았어요"
"어머니. 주요 과목 잘 봤으면 괜찮아요. 중2는 똑똑하기도 하지만 공부 센스도 있어요. 한 개를 가르쳐주면 5개를 가져갈 수 있는 아이예요. 지금은 공부에 시간투자 많이 하는 다른 학생들보다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험결과를 보면 실제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대비 어머님의 중2가 더 똑똑한 거죠. 천천히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중2는 멘탈도 강한 편이라 명문고등학교에 보내시는 게 맞아요"
아....
명문고등학교 보내려면 3학년 2학기때까지 이놈과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하는데...
난 자신이 없단 말이다.
오늘 통화한 다른 중2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게임 노트북을 던졌는데, 노트북이 멀쩡하다셨죠?
저는 열받아서 아들의 아이폰을 던졌는데... 수리비가 35만 원 나왔어요. ㅜㅜ "
그래..
나만 힘들게 사는 건 아닌가 보다.
한국의 중2 남학생 엄마들 파이팅!!
지구상의 모든 갱년기 엄마들 파이팅!!
그러고보니.. 나는 항상 아들에게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나중에 후회가 덜 할 수 있는 현재의 과정을 위해 한땀힌땀 노력해 보자꾸나
사랑한다
나의 중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