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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l 16. 2024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기말고사 첫 번째 날

아들은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고 나에게 사죄했고

(평생 남자에게 무릎 꿇는 거 첨 당함)

마지막날엔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이가 내민 폰에서는 낯선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생 남자에게 음성편지 첨 받음)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중2친구 철민이에요.

중2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너무 야단치지 말아 주세요"

아들 친구의 우정 어린 멘트에 어이가 없어서 웃긴 했지만 내가 웃는  웃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날 시험점수는 앞서서 놀란 점수보다 더 처참했기에..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냐며 앞으로는 미리미리 열심히 공부하기로 약속하고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며칠 후 심적인 충격이 컸던 탓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감기가 옮아서인지 나는 3일 동안 몸져누웠다.

목이 붓고 물도 삼키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끝없이 잠이 쏟아졌다. 병원을 갈 기운도 없어서 그냥 계속 잠만 잤다.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내공이 있다 스스로 믿고 있었는데,

고작 아들의 기말고사 점수 하나 때문에 심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다니...

컨디션을 회복한  나는 중2를 평범한 고등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중2의 미래는 중2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나는 나의 삶을 살기로....

그렇게 7월의 여름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며칠 전

움파둠파 흥겨운 벨소리에 전화를 받았다

논술선생님이셨다. 그룹으로 논술과외를 받은 지 1년 반쯤 되었는데 엄격하고 바른말만 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이다.

"어머니. 국어는 만점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과목 점수는 어땠나요?"

나는 참았던 서러움을 쏟아냈다.

선생님! 아이가 하필 시험직전부터 아팠다. 그 자식은 벼락치기할 계획이었을 테니 당연히 암기과목 전부 망쳤다. 사필귀정, 인과응보가 아니겠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얘는 글러먹은 것 같다.

차분히 내 얘길 들으시던 선생님은

"어머니 그러니깐 그 아픈 와중에도 국영수과 주요 과목은 다 잘 봤다는 거죠?

"그렇긴 한데요. 쓰앵님!! 암기과목을 다 망쳤어요. 폭망요! 폭망!! 다른 애들 4주 전부터 기말준비했대요. 걔들 암기과목 다 만점 받았어요"

"어머니. 주요 과목 잘 봤으면 괜찮아요.  중2는 똑똑하기도 하지만 공부 센스도 있어요. 한 개를 가르쳐주면 5개를 가져갈 수 있는 아이예요. 지금은 공부에 시간투자 많이 하는 다른 학생들보다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험결과를 보면  실제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대비 어머님의 중2가 더 똑똑한 거죠. 천천히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중2는 멘탈도 강한 편이라 명문고등학교에 보내시는 게 맞아요"


아....

명문고등학교 보내려면 3학년 2학기때까지 이놈과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하는데...

난 자신이 없단 말이다.


오늘 통화한 다른 중2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게임 노트북을 던졌는데, 노트북이 멀쩡하다셨죠?

저는 열받아서 아들의 아이폰을 던졌는데... 수리비가 35만 원 나왔어요. ㅜㅜ "


그래..

나만 힘들게 사는 건 아닌가 보다.

한국의 중2 남학생 엄마들 파이팅!!

지구상의 모든 갱년기 엄마들 파이팅!!


그러고보니.. 나는 항상 아들에게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나중에 후회가 덜 할 수 있는 현재의 과정을 위해 한땀힌땀 노력해 보자꾸나

사랑한다

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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