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상태를 보니 선생님이신가요?
아니요. 그저 아들 둘을 키우고 있을 뿐입니다.
희한하게도 개학을 하고 나면 늘 목상태가 좋지 않아 이비인후과에 가고는 하는데,
어떤 의사는 혹시 직업이 교사냐고 물었다.
아니요, 선생님. 교사라면 방학식을 할 무렵 병원에 왔겠지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질문이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는 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웃긴 얘기도 많고, 궁금한 것들도 많았는데
참 좋고 감사한 일이지만 온종일 "엄마, 있잖아.", "엄마?", "엄마, 내 얘기 듣고 있어?"를 듣다 보면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밤 중에도 환청처럼 "엄마?"가 들리고는 했다.
가장 난처할 때는 아이들 둘이 동시에 할 이야기가 생겼을 때였다.
형이, 혹은 동생이 말하고 있는 건 들리지 않는 게 분명했다. 내 귀가 두 개지만,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듣고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한 명씩 이야기를 하자, 하고 순서를 조율하지만 이게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명이 말을 다 끝내지 않았음에도 다른 한 명은 어서 말을 하고 싶어 애가 닳는다. 그러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할 타이밍을 노리다가 잠깐 빈틈이 생겼을 때 바로 비집고 들어가 말을 시작한다.
"엄마, 그러니까 아까 내가 하려던 말이 뭐냐면."
"나 아직 말 안 끝났거든?"
... 이렇게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하루에 엄마는 다섯 번만 부르기,라는 규칙을 만든 날도 있었다.
만들어 공표하면서도 지켜지지 못할 규칙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너희도 알고 있었던 그런 규칙.
얼마간 잊고 지냈던 그 규칙을 이번 여름방학 때 한번 더 꺼내게 되었다.
갑자기 입이 터진(^^;;) 아이들이 뭔가 할 말이 많아진 터였다.
말 없어진 사춘기 아이들이 엄마! 를 불러준다니 고맙기도 한 일이지만,
꺼내놓는 이야기들은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어떤 유튜버 얘기, 무슨 요리 얘기, 앨범 얘기, 그런 것들.
물론 처음에는 나도 격하게 리액션을 하며 졸린 눈을 애써 반짝이며 경청하고 돌아서서 검색도 하고 외워도 보고 그랬다.
하지만.
엄마도 집에서 나름 할 일이 있단다, 얘들아.
가뜩이나 집중력도 떨어지고 돌아서면 다 까먹는데 너희가 자꾸 부르니까 책장이 넘어가지를 않아.
그러니 하루에 엄마는 다섯 번만 부를까. 엄마가 책상에 앉아있을 때는 꼭 해야 할 말을 요약, 정리해서 말해주면 좋겠어. 이제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잖아. 그렇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조용하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 뭘 하는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내가 잠깐 큰 착각을 했구나. 세상에, 배부른 소리를 했네.
괜히 간식을 챙겨 들고 똑똑 노크를 하고는 바빠? 하고 묻는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아, 엄마. 나 할 말 있었는데 내가 아까 학원에 갔단 말이야? 그런데 셔틀버스에서...."
아이의 수다가 다시 시작된다. 언제 들어왔는지 둘째까지 합세해 "그거 나도 아는데 요즘 그거보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우리끼리 별것 아닌 이야기들로 웃고 떠든 순간들이 다 추억이 되겠지.
육아도 다 한 때이고, 금세 지나갈 시간이니 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