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밤 10시 30분.
둘째가 학원 셔틀에서 내려 집에 거의 다 와가는 것을 확인하고서 나갈 준비를 한다.
운동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러닝벨트에 휴대전화를 넣고서는 러닝화를 신는다.
이 시간에 나가는 이유는, 하루 중 제일 마음이 편하고 여유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첫째도 어느 정도 하루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을 테고,
약속이나 회식이 늦어지지 않는 한 남편도 귀가했고,
학원이 끝나고 아이스크림 할인점이나 편의점, 놀이터에 들러서 한참 수다 떨지 않고 둘째도 집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나의 하루 일과가 종료된다.
가끔 둘째의 위치가 동네 상가나 놀이터로 잡힐 때는 순찰을 쓱 나갔다가 달릴 때도 있다.
순찰을 할 때는 재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아는 체를 하거나, 모르는 척 비껴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날은 모르는 사람인 척 모자를 눌러쓰고 지나가는데 둘째가 '엄마?' 하고 먼저 알은체를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기분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짜릿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원래 나는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수영을 조금 다녔었고, 대학생 때도 수영도 다니고 헬스도 다니고 밤에 동네 공원을 주기적으로 걷기도 했으나 모두 자의가 아닌 타의, 그러니까 친정 엄마의 권유 때문이었다.
운동의 필요성도, 재미도 잘 느끼지 못하다가 육아를 하면서 조금씩 체중이 늘어나고,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운동들을 했지만 슬슬 빠지다 결국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스스로 러닝을 시작했다. 돈을 내서 빠지면 아까운 것도 아니고, 동호회 사람들과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제 발로 걸어 나가 트랙을 따라 달린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나뭇잎들이, 제법 시원해진 밤공기가,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어지러운 마음을 다독인다. 그게 참 좋다.
이어폰도 끼지 않고, 조용히 주변 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달리다 보면 온종일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일들이 조금은 희석되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점점 맑아지는 것 같다.
마침 마주 오던 엄마와 아들의 대화가 귀에 쏙 들어온다.
"그냥 뛰어라, 제발. 뭘 자꾸 조건을 거니."
엄마의 해탈한 듯한 표정이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내 표정과 비슷해 찌인한 동료애가 느껴진다.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었을까. 제법 배가 통통하게 나온 아들은 입을 쏙 내민 채였다.
그렇지. 저럴 때가 있었지. 우리 애들은 이제는 같이 나오자 하면 질겁을 하겠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조건들을 내세우며 엄마를 따라나선 때가 있었지.
아이를 점점 키워갈수록, 내 마음대로 되는 건 거의 없다. 아니, 내가 바라는 대로 될 수만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면서도 온종일 마음을 쓰고 한숨을 내쉬고 웃음을 잃어간다.
아이에게 조금 더 열심히 할 것을 은근슬쩍 재촉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찔리는 마음이 든다. 나는 언제 저 아이처럼 저렇게 열심히 산 적이 있었나.
어느 날,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슬픔이 가득한 얼굴이랄까. 이런저런 삶의 고통에 지친 표정이랄까.
생기 발랄하고 많이 웃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일 년 사이 나는 많이 늙어 보였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수행도 아니고, 조별 과제도 아니고, 동아리도 아니다.
응원을 하고, 고민을 들어주고, 이런저런 신경을 써줄 수는 있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 이제 그만 걱정은 내려두고 나는 나를 잘 보살펴야겠다.
내가 먼저 행복한 어른이 되고 내가 먼저 꽉 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행운이 따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