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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육아는 수많은 나를 만나게 한다

by 오 광년


‘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동네가 필요하다. ’


라는 말이 있다. 육아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통달한 문장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직장 출근 전에, 아이를 바로 맡길 수 있는 기관이 있거나 등하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댁이나 친정이 있다면 괜찮은 축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또 문제는 다른 차원으로 복잡해진다. 아이의 하교 시간 후에도 직장에 있어야 하는 엄마라면, 방과후 여백을 위해 학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평일은 그럭저럭 보낸다 해도, 육아의 백미는 바로 주말이다.


토요일 아침에도 아이들의 기상 시간은 7시 전후다. 알람이 없다면, 정오까지도 잠을 잘 수 있는 나로서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주말 아침이다. 비몽사몽으로 식빵을 굽고, 계란을 후라이팬에 깨뜨린다.


엄마표 브런치를 먹은 후, 아이들과 차를 타고 도서관을 향한다. 우리가 자주 가는 도서관이 두 곳이 있는데 둘 다 집에서는 거리가 꽤 멀다.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집 근처의 도서관보다 훨씬 넓고 책도 많아 우리 모두 만족한다.


도서관에 가는 게 지겹다고 하면, 공원에 가서 곤충도 잡고, 바닷가에 가서 돗자리 펼쳐 놓고 모래 장난을 하다가 오기도 한다.


집 안에만 있으면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 밖에 나와야 그나마 시간이 흐른다.


“ 엄마, 이제 우리 밖에 나와 있으니깐 집에 장난감들 뭐하고 있을까?”


밖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 차에 막 들어오자마자, 첫째가 물었다. 이제 막 운전대를 잡은 나는 “ 후, 엄마 한숨 좀 돌리고 ” 라고 중얼거렸다. 운전 중에, 심심해하는 첫째에게 아무렇게나 막 지은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정말 앞뒤 없고, 결말이 산으로 가는 스토리인데도 신나했다.


그러다, 이제는 둘째까지 합세해 엄마의 막 이야기를 조른다.



“ 응, 일단 우리가 외출했으니깐, 집 안에 있는 제일 큰 공룡 인형이 거실 한가운데 서서 모든 장난감들을 불러 세웠지. 그리고 제일 끝에 있는 팔이 부러진 또봇을 불렀어. 어이, 또봇. 냉장고 문 좀 열어봐. 먹을 거 좀 있나 보고 오라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합류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떠오르는데로 말하는 나도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어차피 이야기는 집에 도착하면 바로 끝이 난다. 요즘은 종종 내가 말이 막힌다 싶으면, 아이들이 그 다음을 잇는다.


그러다 보니 꼭 괴물이나 좀비가 등장하긴 하는데 어쨌든, 나로썬 결말에 대한 부담감은 덜었다.



그렇게 하루를 불태우고 나면, 깊은 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얼마나 달콤하고 귀한 시간인지 모르겠다. 책상 위에 앉아서 끄적이고 싶은 것들을 만지고 다듬어본다. 낮 동안 땀 흘리고 소리치고, 뛰어다니고, 웃었다가 집중했다가 그 수많은 나를 토닥여준다. 수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엄마가 수많은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힘든 일이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닥치면 다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바로 육아이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불태우고 가루만 남은 것 같지만, 또 남은 잿가루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이 있다. 아주 작은 알갱이다. 그 알갱이들을 나는 조금씩 주워 모은다. 아이들을 데리고 보낸 시간 속에서 만들었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본다. 하나씩. 하나씩. 뼈대만 남은 곳에 살도 붙여주고, 그럴 듯하게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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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코감기를 달고 살았던 둘째와 만들었던 이야기다. 주사보다 콧물 흡입기를 더 무서워하는 떼쟁이 둘째는 동네 소아과에서 알아주는 울보다. 울고 떼쓰는 건 둘째치고 성량이 어마어마하다. 콧물을 빨아들일 때마다 대성통곡을 하는데 그 소리에 진료실 전체가 흔들린다. 콧물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꾸며 보면서 아이를 달랜다. 누런 콧물이 호스관을 따라 빠져나오면서 콧물 요정들이 드디어 탈출한다고 랩을 해대곤 했다. 시뻘개진 얼굴로 마이쭈를 입에 넣고 안정을 찾은 녀석을 안고 병원 밖을 나오면 크게 한숨을 돌린다. 그런 소소하면서도 묵직한 일상들로 책을 만들고 있다.



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도 보람이지만, 이 책을 우연히라도 보는 누군가에게 웃음과 공감을 줄 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기쁠 거 같다.



‘수많은 나’가 되어야 하는 부모인 우리 모두에게.

늘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모두, 너무 잘하고 있다고.


[전자책] 콧물왕자 - 예스24



콧물왕자 - Mrearth 페이퍼 : 유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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