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두통 왔다. 나를 중심으로 아는 두 사람은 다퉜고 각자의 입장에서 섭섭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듣다가 보면 이야기는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섭섭한 얘기를 할 때는 참으로 이성적이기 어렵다. 그 두 사람도 그랬다. 어느 편을 들기도 난감하고 소통이 부족한 오해 같아서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일단 들어주기만 했다.
그렇게 다른 이의 섭섭한 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서로 어디까지나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빠지고 그저 자기감정에만 빠져있다. 이야기는 균형을 잃는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두 사람 간의 섭섭한 얘기가 잘 풀어지려면 대화로 자연스레 흘러가야 하는데 감정이 앞서니 매끄러울 수가 없다. 서로 제대로 된 대화는 해보기 전에 내 입장을 방패가 되어 다툼이 된다. 듣다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겉도는 대화가 안타깝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답은 없기 때문에 어렵다.
서로 다른 창을 바라보면서 각자가 앉은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잘 아는 답이지만 섭섭한 감정처리의 정답은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밖에는 없다. 그 노력 없이는 풀리지 않는 매듭일 뿐이다. 매듭을 풀겠다고 무작정 잡아당겨야 끊기고 만다.
사는데 노력이 없이는 그 무엇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살아갈수록 느끼게 된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나 또한 오래전에 서운한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안다. 내 중심에서 바라본 시선으로 내가 속이 좁았던 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알겠다. 지금 생각하니 잠시나마 가져던 내 감정이 유치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 노력 중이다. 섭섭할까 말까 하는 감정 앞에서 애써 침착해지려고 애쓴다. 섭섭한 감정도 집착스러울 때가 있어서 잠시 그 감정이 들 때는 시간을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당장의 감정으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생각하려고 한다.
섭섭함의 속마음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 그렇다. 섭섭함의 근거도 욕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냉정한 말 같아도 아무 기대가 없다면 섭섭하지도 않다. 너무 담지 말고 비우고 살자. 무겁다. 살면 살수록 이제는 가벼운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