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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사는 맛 17화

단순한 삶을 위하여

by letitbe

어느 날은 내가 저 사람을 왜 싫어했더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분명 싫어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있었다. 그런데 내가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더 이상 나를 만만히 보지 않는 것인지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이 신경이 덜 쓰였다. 이제 무시하기로 해서 그 차곡한 다짐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인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아서 생각나는 게 아니라 싫어서 생각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방심할 순 없다. 사람이 달라지기는 쉽지 않은 터라 언제 또 내 감정을 건드리면서 내가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전과 달라진 것은 분명히 있다. 내 마음가짐인 것 같다. 이제는 어떤 상황이 와도 무조건 참기보다는 숨 한 번 고르고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마음처럼 잘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마음이라도 단단히 먹고 있으니 이제 존중하지 않는 말과 행동은 참지 않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려면 서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있어야 유지된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가 싫어진다는 감정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내게 도움이 될 일은 하나도 없을 테니까 마음속에 들여서도 안되지만 살다 보면 어찌 그게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싫다는 감정이 들 때면 싫은 이유를 곱씹으면서 그 감정을 복습하지 말고 차라리 마음속에서 '그러라 그래'라고 혼잣말을 해 보자 싶었다. 물론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감정처리도 또한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아니니 보다 성숙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싫은 감정을 처리하는 연습을 해야 할 필요성은 느낀다.


아이가 어렸을 때였다.

"아들 어제 엄마가 꿈속에서 세탁기를 돌렸지 뭐야"

꿈속에서도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서 아침에 깨자마자 7살쯤 되는 아이한테 그런 말을 했다.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마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듯한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랬다.

"싫은 건 생각하지 마. 싫은 걸 생각하고 자니까 그렇지."

툭 던진 아이의 말이 잔잔한 호숫가에 돌멩이 하나가 툭 던져져 파장을 일으키듯 내 마음에 작은 울림이 되었다.

'싫은 건 생각하지 마'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싫은 것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고 사는 편인 것 같다. 싫다면서 툭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찡그린 감정으로 받아서 저장한다. 잊어야지 하면서도 계속 생각한다. 비운다고 하면서 말 뿐이고 어느새 머릿속은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다가 결국 잠을 설치고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기도 한다.


싫다는 감정이 한번 마음속에서 고체화가 되면 그대로 굳어 버리고 쉽게 마음 밖으로 내보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게 굳어버린 싫은 감정은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아 오가지도 못하고 더 딱딱하게 굳어져 가니까 굳기 전에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감정을 흘려보내는 일 그 일을 정말 잘 해내고 싶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얼마나 많겠는가.

그럴 때마다 싦은 감정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 마음은 여유도 없이 너덜너덜 누더기가 되어 버릴 것이다.


'싫은 건 생각하지 마'

아이의 간단명료한 단순한 대답이 해답일 수도 있다.

점점 단순하게 살고 싶은 내게 다시금 귀 담아 새겨야 할 한 마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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