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나서 남은 반찬을 빈 그릇통에 옮겨 담았다.
이 정도면 다 담기겠지 싶어서 담고 있는데 그릇이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억지로 좀 담아보려다가 결국 넘쳐서 설거지만 더 만들고 다 담지도 못하고 다른 그릇통에 옮겨 담았다. 그러다가 부엌에 진열된 크기도 제 각기인 그릇을 둘러보니 그릇도 저렇게 담을 수 있는 정해진 양이 있는데 사람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은 작은 종지그릇부터 국그릇, 큰 냉면그릇 등등 너무나 다양하다. 어느 그릇이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그저 쓰임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릇의 크기는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담지 못한다고 그릇 탓을 하면 안 된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관계와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속으로도 혼자 생각하다가 때로는 겉으로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어." 하면서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은 결국 스트레스의 근원이기도 한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쉽게 여러 번을 뱉기도 했지만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답도 없는 말 같다.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내가 다 이해하려고 할까. 이해를 못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르는데 당연한 사실을 내가 거스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 또한 욕심이 아닐까.
전부터 그런 우왕좌왕 혼란스러운 마음속에서 그럴 때마다 나를 이해시킬 방법을 찾아보곤 했었다. 그래야 나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말이다. 그러나 빙빙 생각만 하다가 늘 원점이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반찬 정리를 하면서 사람도 저마다의 가지고 있는 마음속 그릇의 모양도 다 다르니 사람에 대해서 기대치를 키우지 말자고 생각했다. 담을 수 있는 마음이 사람마다 다 다르니 사람을 탓할 수 없고 그냥 느껴지는 사실대로 보이는 대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릇이 작게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넘치게 담으면서 왜 그 그릇이 그것을 담아내지 못하냐고 탓해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냥 보이는 대로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끄덕여 보며 지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이 또한 하루아침에 내일부터 뚝딱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인적이 없는 외딴섬에서 혼자 가서 살지 않는 이상 내 마음에 평온을 줄 처방전은 내가 내려줘야 할 것 같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고유하고 소중한 존재임은 맞다.
존재만으로도 다 특별한데 감정이 앞설 때는 그 사실을 깜박 잊는다. 내가 소중하듯이 타인도 그렇다는 전제를 이성적으로 잊지 말고 설령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 사람을 미워할 필요도 없고 그런 권리도 내게는 없다는 것을 인지하도록 하자. 우리는 서로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자체를 바라보며 탓하지 않는 습관을 해 볼 생각이다. 좋은 습관은 결국 나를 이롭게 할 것이다. 내가 내게 바라는 것은 이해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피곤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만큼의 이해를 허용하며 살면 좋겠다.
나 역시 한없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나를 이해 못 한다고 내가 또 누굴 탓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