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으로 돌솥비빔밥을 먹으러 갈까 아니면 묵직한 커피로 할까 고민 끝에 커피로 결정했다. 좋아하는 책과 맛있는 커피가 있는 그리고 잔잔한 재즈음악이 있는 카페인데 한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발길을 뚝 끊고 지냈다. 시간이 날 때 오랜만에 가봐야 한다. 얼마만인가. 커피를 시키고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아 멍하니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게 없다. 이런 기분들이 내가 느끼는 사는 맛이다. 오늘따라 의자가 여느 때보다 더 안락하니 나를 감싸는 느낌이든다.
주변을 둘러보니 테이블마다 둘, 셋 대화상대가 있다.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만 혼자다. 날 바라보는 어떤 이는 카페에 혼자서 뭐 하나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평온하니 좋다. 약속을 만들려면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의식적으로 오늘은 혼자를 선택했다. 한동안 스스로 나를 들여다보는 대화가 부족했다. 그런 탓이었을까. 마음이 정리정돈이 되지 않아서 자꾸만 어수선한 느낌이다. 운동화 속에 모래 한알이 들어가 걷는 내내 신경 쓰이며 거슬리듯 여러 가지 감정들이 울퉁불퉁 불편하다. 그럴 때는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요즘 들어서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문득문득 생각이 많아진다.
'바쁘게 지나왔지만 나를 조금 더 챙길걸.'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이를 먹는 것인지 이렇게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되는 일들이 생각나고 아쉬운 것들만 툭툭 생각이 난다. 아마도 최근에 눈 컨디션도 안 좋은 것도 내 컨디션에 크게 한 몫을 한 것 같다. 오른쪽 눈이 녹내장 진단을 받은 지 6개월쯤이나 되었을까 싶은데 밤마다 안약을 꼬박 챙겨 넣으면서도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어려서부터 눈이 나빠서 눈에는 관심이 많았는데 설마 내 얘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녹내장이라는 진단을 받게 될지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기에 사실인정보다는 끊임없이 조금은 흐릿한 오른쪽 눈은 속상함이 더 크다. 한쪽 눈만 그러하니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나이 들어갈 것인가? 에 대하여 가끔 생각하게 되는데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 나이 들어가야겠다고 자신만만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행여나 점점 시력이 나빠져서 이마저도 못할까 봐 우울해지고 싶은 심정이다. 틈틈이 비집고 들어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며 간신히 우울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인간은 적응하기 쉬운 동물이니 다 잘 될 것이라고 자기 체면을 걸고 있다.
바뀌지 않는 사실을 어쩌겠는가.
내게 주어진 사실을 인정해야 웃을 수 있을 것 같으니 피할 수 없다면 이 상황을 마음속으로 토닥이는 수밖에는 없다. 눈앞에 놓인 진한 커피 한잔을 두고 이렇게 나와의 타협과 다짐으로 야무지게 혼잣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