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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 느와르

 가난한 중학생 3인의 생존기

by 마이즈 Feb 06. 2025

중학교 교무실. 소지품 검사에서 담배를 걸린 학생들이 엎드린 채 매를 맞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나였다. 억울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지는 않겠지만, 대신 놈들에게 한동안 더 심한 폭력을 당할 것이다. 교무실에서 적당히 맞고 청소 며칠만 하자. 그럼 적어도 그동안은 괴롭히지 않겠지. 몇몇 선생님은 진실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나를 착하고 불쌍한 아이로 인식하는 듯했다. 네가 그럴 아이가 아닌데... 따위의 말도 종종 하셨다. 그래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불량한 아이들에게 끌려 다니던 어느 날, 담배를 배웠다. 혼자만 비흡연자라면 자연스럽게 망을 보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혹시 걸리기라도 하면 분풀이의 대상이 돼야 했다. 같은 무리가 되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같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자 과연 괴롭힘의 대상이 내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옮겨갔다. 학폭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되는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타깃이 된 아이는 빨간 콩으로 불렸는데, 그 역시 가난한 아이였다. 나보다 먼저 학폭의 타깃이었던 ‘군이’와 두 번째 타깃이 된 나, 그리고 빨간 콩은 종종 셋이서 따로 만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셋 다 가난했고 일자리가 필요했다. ‘군이’는 자전거를 훔쳐다가 팔거나 취객의 지갑을 건드렸고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빨간 콩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난을 즐겼다. 아무튼, 우리 셋 다 결국 담배를 배우면서 불량 그룹에 들어갔고 그로 인해 학폭의 대상은 다음 사람에게로, 다시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담배가 기본이 되자 본드를 권유받았다. 비닐봉지에 담아 코와 입을 대고 봉한 뒤에 들이마신다. 하지 않으면 이전처럼 폭력의 대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맵고 불쾌한 기분이 들어 그다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안 할 수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과 모여 주로 본드를 부는 장소가 지하 오락실 옆 골목이었다. 덕분에 게임을 핑계로 여러 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빨간 콩은 끝까지 본드를 불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나쁜 일에는 손대지 않으려고 했지만, 불량 그룹과 다니는 이상 항상 피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부터 약한 아이들을 화장실로 끌고 가서 돈을 뺏는 일에 끼게 되었다. 너는 목소리가 별로니까 뒤에서 조용히 분위기만 잡아라. 그래도 인상은 더럽잖아? 그렇게 삥 뜯는 모습을 방조하며 벽에 주먹질을 했다. 무력한 나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었지만, 피해자들은 이런 나를 보며 무서워했다. 그렇게 빼앗은 돈 중 일부를 받게 되었지만,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매번 오락실에 가서 다 써버렸다. 한 번은 다른 학생의 돈을 뺏던 중 경찰에게 들키는 일이 있었다.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달렸다. 당연히 잡힐 줄 알았지만, 운이 좋았다. 경찰이 이 근방 지리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굴다리 옆 갈라진 틈에 한참 숨어 있다가 날이 어두워진 후 빠져나왔다. 그때 붙잡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날, 만화책을 보다가 힘보다 강한 것이 ‘깡’이라는 이상한 내용에 꽂혔다. 바로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칼을 하나 샀다. 회칼보다 작고 식칼보다는 큰 사이즈였다. 어디에 쓰는 용도인지는 몰랐고 딱히 알 필요도 없었다. 가방에 들어갈 사이즈 중 가장 큰 것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칼을 들고 다니며 이를 뽐냈다. 그러자 불량 그룹 아이들이 나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편안하게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역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다른 학교와 싸움이 나거나 하면 나보고 가서 누구누구를 찌르고 오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매번 도망쳐야 했다. (& 요구르트와 콩자반 &)

군이와 빨간 콩과 나는 셋이 함께 학교를 빼먹는 일이 많았다. 학교는 우리에게 피하고 싶은 장소였으니까. 빨간 콩은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일용직 일을 한다고 들었다. 낮 시간에는 집이 항상 비어있었기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게임기를 들고 가기도 했지만, 두 친구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끔은 셋이서 술을 마셨다. 빨간 콩이 술에 약해서 금방 주사를 부리기는 했지만. 동네 놀이터에서 그러고 있으면 아무도 건들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센 척이 가능한 유일한 공간이었다. 누구든 잔소리를 하려고 들면 내가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셋이 도망쳤다.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불량 그룹의 아이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실종이나 사망했다는 말은 아니다. 몇몇은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으로 잡혀갔고 자퇴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좋든 싫든 그 놈들과 항상 어울려 다녔는데, 어떻게 나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 어찌 보면 칼을 들고 다니며 때때로 휘둘렀으니 제일 위험하게 보였을 수도 있을 텐데. 빨간 콩이 말하길 ‘너를 구해준 것은 게임’이라고 했다. 그 놈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너는 오락실에 박혀 있었잖아. 그리고 너는 게임을 만든다는 목표가 있지만 놈들은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 거야. 어쩐지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게임에게 감사했다. 그래서 빨간 콩, 너는 뭐 할 건데? 나? 나는 이제부터 찾아야지. 놀이터에서 술을 마시며 처음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빨간 콩은 혀가 꼬부라지는 소리를 하더니 이내 잠들었다. 처음으로 단 둘이서 위로주를 마시던 중이었다. 자전거 도둑 ‘군이’ 마저 경찰에 붙잡힌 날이었으니까.

30대의 내가 빨간 콩을 다시 만난 것은 어느 쇼핑몰에서였다. 길 가던 나를 붙잡고 먼저 알아봐 주었다. 작은 체구로 괴롭힘을 당하던 그는 거구가 되어 있었다. 야, 진짜 완전 변했네, 몰라보겠다. 너는 그대로네? 그래서, 요즘 뭐 하냐? 보다시피 핸드폰 팔아. 폰 바꿀래? 바꾼 지 얼마 안돼서 그건 좀. 그래서 너는? 게임 만드는 사람이 됐냐? 게임 회사에 다니고 있긴 해. 그럼 꿈을 이룬 거네? 글쎄. 생각이 많아지네. 같이 한잔 할까? 아니, 폰 바꿀 일 있으면 다시 올게. 그래. 야 반가웠다. 꼭 와라.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약속대로 휴대폰을 바꾸러 갔지만 어느 가게에서도 빨간 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잘 살아 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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