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업계의 경험도 다 쓸모가 있더라
아버지를 반쯤 협박하며 결국 퇴사 처리를 진행했다. 변호사를 찾아가 법률 상담을 받았는데, 내가 빠져나올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향후에도 그 회사를 물려받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지분을 완전히 뺄 수는 없었기에 최소화시켰다. 가업 승계에는 문제가 생겼지만 아버지가 재혼을 하면서 다른 형태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예상대로다. 타이밍을 잘 잡아낸 나에게 치얼스! 몇 번인가 나와 만났던 가업 승계 담당자는 회사 가치를 정리한 문서를 내밀었다. 이걸 포기하시는 겁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하나 둘 셋… 12자리 숫자였다. 저에게서 게임을 빼앗아 가려면 이 정도로는 안됩니다. 자릿수가 100개는 돼야지요.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몇 년간 N사를 다니던 시기의 절반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다녔고 심지어 아파트와 차를 샀기에 남은 돈이 없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그때 흰 늑대를 만났다.
흰 늑대는 탄흔의 회사를 다니던 시기의 동료였다.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잘 생겨서 깜짝 놀랐던 미소년 기획자. 나와 함께 팀장님의 멱살을 잡고 옥상에 올라갔던 동지였다. (탄흔의 경유지) 탄흔의 회사를 나온 이후에도 우리는 함께 UML이나 LUA 스터디를 했고, 함께 인디 게임을 개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비록 드롭되긴 했지만. 그는 나름 이름 있는 게임 회사에 다니면서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투 잡을 하고 있었다. 운영과 그래픽 외주를 하는 회사였다. 형, 저희도 이제 자체 론칭 해보려고요. 게임 만들고 싶다고 했죠? 흰 늑대가 기회를 주었고 나는 수년만에 디펜스 게임 개발에 돌입했다. 회사에 프로그래머가 없었기에 맹우인 조 군에게 연락했다. (맹우) 우리 같이 게임을 만들자!
개발이 30% 정도 진척되었을 때, 좋은 소식이 있었다. 흰 늑대의 회사가 중국 투자를 받고 급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녀석의 개인사라 밝힐 수는 없지만, 삼성동 빌딩에 두 개 층을 사용할 정도로 회사가 갑자기 커졌다. 형, 회계랑 사업이나 영업도 할 수 있어요? 어, 공장에서 배워온 게 그거야. 중국에서의 게임 산업이 크게 확장되던 시기였다. 너무 큰 기회였다. 흰 늑대 덕분에 얻게 된 기회. 덕분에 사업부와 개발부를 모두 관리하는 본부장이 되었다. 중국 게임 서비스와 마케팅, 로컬라이징을 주 업무로 하는 사업 PM 경력을 가진 흰 늑대군의 다른 친구 한 분이 합류하면서 회사의 체계가 구축되었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할 때와 달리 드디어 내 홈 그라운드로 돌아왔다는 느낌이었다.
중국 자본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출장을 자주 갔다. 중국 투자가 분이 한국에 오시면 주말마다 함께 등산을 가기도 했다. 제조 분야의 대기업 노동조합에게 영업과 접대를 하고 돌아온 뒤라서 그런지 힘들지 않았다. 중국 대기업의 요청으로 자체 게임 개발도 시작했다. 쇼핑몰과 연계된 옷 갈아입히기 게임이었다. 덕분에 기존에 조 군과 개발하던 디펜스는 드롭되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기획자 후배를 우연히 만났는데, 다니던 회사에서 팀 전체가 빠져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본인들끼리 사업을 할까 한다고. 우리 중국 대표가 게임을 보더니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단 조건은 내가 직접 관리할 것. 그렇게 후배가 소속되어 있던 개발팀 다섯 명을 우리 회사로 들였고 우리 개발 본부 소속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계속 투자하거나 퍼블리싱할만한 한국 게임을 찾았다. 덕분에 외부로 돌아다니며 다양한 게임 개발사를 만날 수 있었다. 첫 회사에서 은인이었던 김 부장님이 창업한 회사도 다녀왔고, 게임쇼에 참가한 회사들과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 부장의 멘토링) 대만에 있는 개발사가 한국까지 우리를 찾아와서 게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퍼블리셔의 입장은 이런 거구나. 그중 몇 개의 게임을 계약했고 중국 게임은 로컬라이징을 통해 한국에 서비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동안 게임인으로써 나의 약점은 라이브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다. 항상 신규 개발을 진행했고 오픈하고 나면 오래지 않아 이직해야 했으니까. 이 회사 덕분에 MMORPG와 수집형 RPG의 서비스와 운영, 마케팅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아, 물론 로컬라이징 작업도 상당히 많이 했던 것 같다.
퍼블리싱을 검토하기 위해 다녀온 업체 중에는 N사 본부장님이 창업한 회사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본부의 바로 그분이셨다. 역시 본인이 가장 큰 성공을 하셨던 레이싱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개발팀은 대부분 N사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형님들이셨다. 반가운 마음에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달려갔는데, 돌아온 반응은 상처를 받기에 충분했다. 저 새끼 잘난 척하며 회사 나가더니 뭐 주워 먹을 거 없는지 구걸하듯 찾아온다고 말하셨다. 게임은 아쉽지만 회사 대표의 마인드가 좋은 경우와 게임은 괜찮지만 회사 대표의 마인드가 아쉬운 경우, 어느 쪽과 계약하고 싶겠는가? 그 한 마디에 정이 떨어져서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왔다. 물론 개발팀에 있는 형님들과는 반갑게 이야기했다.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공장에서 배워온 개발 외 스킬들이 게임 업계에 맞게 커스텀 되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이었다. 전혀 다른 제조업 분야였음에도 그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 사내 정치에도 민감해졌고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소셜 스킬도 확장되었다. 회계와 영업, 사업과 관리 전반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무엇보다 게임 업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꼈다. 덕분에 힘든 일이 있더라도 웃으며 대처할 수 있었다. 만드는 사람에서 사업과 영업 마케팅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장착되었다. 유일한 걱정은 나이였지만, 이 부분은 KGC에 참가하며 현명한 멘토를 만나 해결되었다.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렇게 자만하기 시작했다.
잊을 수 없는 어느 연말 회의. 흰 늑대의 대표실에서 임원들이 모였다. 올 해의 수익을 결산하고 내년도 사업 예산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회사는 착실히 성장하는 것 같았다.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겠다며 들떠 있었다. 그때 경영지원 팀의 직원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비현실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핵심 투자자가 배신을 한 것이다. 심지어 흰 늑대 대표와 특별한 관계였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회사가 크면 클수록 금액의 규모가 많으면 많을수록 대처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 내년의 희망을 계획하던 회의는 직원과 회사를 정리하는 회의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