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친구 마사미상네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삿포로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친구 L의 친구인데 어쩌다 보니 나까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요. 저에겐 엄청난 행운이자 복입니다.
한국에 유학했던 적이 있는 언니라 한국어도 유창하고 인품도 더할 나위없어서 정말 배울 게 많은 좋은 사람입니다.
아무튼 매주 수요일에 만나서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데 이번엔 마사미상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한 거지요.
일본사람들이 집에서 흔히 해 먹는 手巻き寿司(테마키스시)를 만들어 먹자고 했습니다.
마사미상의 집이 지하철 역에서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는 외진 곳에 있으니 역 앞 마트에서 같이 장을 보고 들어가기로 했지요.
마사마상의 집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일본의 一戸建て(잇코다테, 단독주택)에 가본 적이 없는 나는 홀딱 반했습니다.
깔끔하고 정갈하고 아기자기하고…
마당에는 スズメ(스즈메, 참새)와 シジュウカラ(시쥬카라,박새)가 날아들고 눈밭엔 여우발자국이 있는
참 부럽도록 예쁜 집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삿포로의 잇코다테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네요. 눈 치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겠지만.
음식을 준비하는데 마사미상이 물었어요.
도루? 더루? 그 말이 뭔지 몰라서 어제 공부했어요.
도루? 더루?
나와 L은 갸우뚱했지요. 그게 머지?
도루 미안하다고 해서…
아~ 덜 미안하다고!!!
셋이서 한국어의 ‘덜’이 가진 의미와 뉘앙스를 이야기하며 한참 웃었네요.
미안하긴 미안한데 조금 미안한 건 아니고,
이~~만큼 미안하지만 거기에서 조금만 적게 미안한 느낌? 한 80%정도?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완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나의 죄책감(?)을 조금 적어지게 하기 위해 하는 나의 행동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언어적 표현?
이렇게 생각하니 ‘덜 미안할 것 같다’는 말은 상대방이 아닌 지극히 나를 위한 말이네요.
나도 이 표현 정말 많이 쓰거든요.
이거 덜 익었어, 지난주보다는 덜 바빠, 저번 시험보다는 덜 어려웠어, 너 오늘 덜 예쁘다, 덜 괜찮은 거 같은데…
국어사전에는 ‘어떤 기준이나 정도가 약하게. 또는 그 이하로’ 라고 나와있네요.
아마 ‘덜어내다’에서 파생된 말이지 싶습니다.
마사미상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국어공부를 했네요.
한국인들끼리의 대화에서는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표현이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글은 배우기 쉽지만 한국어는 아주 어려운 언어라는 말이 맞는 거 같네요.
우와~ 난 이 어려운 한국어를 엄청 잘하는 사람이었군요!!!
덕분에 일본어 안 늘어서 맨날 쭈그러지던 나의 자존감이 쑥 올라갔습니다.
이제부터 ‘덜’ 실망하고 ‘더’ 씩씩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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