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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K를 만나다

J는 K의 여사친이였을까?

by 시쓰남

25년 9월 26일 아침 06시 12분

흐린 아침. 요 며칠 비가 온다고 예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흐리긴 하는데 비가 하루 종일 오진 않고 드문드문 온다. 오려면 하루 종일 오던지, 아니면 반나절 오던지 찔끔 오다 말다 이 뭐냐. 애들 심술부리는 것도 아니고. 요즘 부산의 비는 이렇다. 애기들이 기저귀에 조금씩 오줌 싸 듯 아주 조금씩 짧게, 우산을 좀 펴서 빗소리 좀 들으려 하면 곧 그치는 그런 가을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어제는 JJ 소개를 했었다. 5통에 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 사람들이다. TT와 JJ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전원일기에나 나올 법한 소중한 경험들을 난 영상으로만 배웠을 것이다. 다시 한번 TT, JJ 고맙습니다.


오늘은 전학 온 우리 교실 친구들을 소개하겠다. 전학 온 날 학교 체육대회가 있어서 그날은 바로 집으로 갔다. 다음 날부터 정식으로 교실에 앉아 친구들과 인사하며, 수업을 들었다. 오늘은 반장과 학교 시스템 및 기타 떠오르는 의식의 흐름대로 이 글쓰기를 맡겨보려 한다.

전학이란 걸 처음 해본 나로서, 매번 전학을 가는 친구와 오는 친구만 보았는데, 내가 막상 당사자가 되니, 전학생들의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를 조금 알게 되었다. 부산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전학 간다고 친구들에게 인사할 때, 그전까지만 해도 전학 가는 친구들 중 일부는 눈물을 보였었다. 그 친구의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왜 울까? 전학 가면 새로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며, 친구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했다.


오늘은 토요일 마지막 4교시에는 학급어린이 회의가 있는 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이고, 이건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계속 그랬다. 교실 앞문에 난 유리창 너머로 E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E도 벌써 울고 온 모양이다. 평소의 얼굴과는 달라 있었다. 잠시 후 노크를 했고, 이제 그만 가야 된다는 소식을 선생님께 전달했다.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단으로 나가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너무나 펑펑 나와 엉엉 울었다. 그때 알았다. 왜 전학 가는 친구들이 눈물을 보이는지. 이 눈물의 의미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눈물이었고, 다시는 볼 수 없음을, 다시는 함께 공부할 수 없음을 알리는 눈물이었다. 너무나 눈물이 나와 친구들에게 어떤 인사로 작별을 알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첫 경험들을 웬만하면 기억하는 나로서도 이 부분은 좀 의아하다. 한참 울다 가방을 싸서 E와 교실을 나왔던 기억만 난다.

우리는 학교를 나와 집을 향해 걸었고, 집으로 가는 도중 외삼촌 댁에 들러, 숙모께 인사하며 또 한 번 울었다. 그때 우리는 작년 가을부터 군산으로 이사 간다는 이야기를 여러 친구들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날이 오리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이날이 이렇게 슬픈 날이 될 줄은 몰랐었다. 그렇게 울며 하루를 보냈고, 다음날 이삿짐 차에 올라타며 정들었던 10여 년의 부산 생활을 마치고, 정말 부푼 기대를 안고(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왜 시골로 가냐고 부모님을 섭섭해 할 뿐) 군산으로 떠났다. 이렇게 떠나와 전학을 왔고, 난 4학년 3반에 배정되었다. 군산에 오니 부산보다는 조금 작은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기는 전 학년이 3반까지 있었다. 그래서 좋았던 건 졸업하기 전까지 동급생들은 거의 모두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반장까지 서두가 길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반장을 소개하겠다. 반장은 보통 친구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우리 반 반장도 그렇게 당선이 되어 우리를 이끄는 줄 알았으나, 우리 반은 선생님의 추천으로 지명되었다고 했다. 이거 뭐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어째서 우리들의 투표권을 선생님이 마음대로 없애 버리냐며, 건의 또는 항의를 했을 거 같은데, 그때는 뭐 선생님이 그렇다는데, 하며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잠깐 부산과 군산의 일부 시스템이 달라 잠깐 소개를 하겠다. 이것도 학교마다 다를 텐데 내가 경험한 이 두 곳은 이런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학급에 반장, 부반장이 있다. 이건 두 곳 모두 공통인데, 군산에서는 회장, 부회장이 따로 있었다. 그러니 반에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 초등학교시절 북한에 대해 배울 때처럼 전 인민의 간부화도 아니고 뭔 간부직이 이리 많단 말인가? 그럼 이 간부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반장의 역할은 두 곳 모두 동일하다, 선생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선생님 부재 시 떠드는 아이 이름 적는 등. (조금 지나면 지우고 했지만) 회장은 내가 위에서 말했던 가장 좋아하는 시간, 즉 학급 어린이회의를 이끌었다. 이 회의의 리더가 회장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회장은 별다른 힘이 없었다. 떠드는 아이 이름을 적을 수도 없고, 반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는 하겠지만, 실질적인 힘은 없었다. 오로지 하나, 학급회의 때 회의를 주도해서 이끌어 나간다는 것뿐. 여기의 회장이 위에서 먼저 소개한 T였다.


우리 반 반장은 K였다. 별명은 강아지. 그래서 K란 이니셜로 소개하겠다. 키는 나보다 컸고, 머리는 항상 짧은 스포츠 형식으로 하고 다녔다. 그 당시 흔하지 않은 빌라에 살고 있었고, 나랑 같은 5통 소속이었다. K집에도 자주 놀러 갔었는데, 동생이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있었다면 남동생이었던 거 같고. K랑 추억을 떠 올리니, K의 여자친구, 지금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자사람 친구가 생각난다. 여사친 친구의 이름은 J였고, 별명은 짹짹이, 조그마한 체구에 논리적으로 말을 잘해서 짹짹이란 별명을 지어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K 및 J는 우리 반 우등생들이었고, 매월 수행평가를 치면 매번 평균 90점이 넘어서 상을 받는 우수인재였다. 그래 부산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매월 수행평가를 치렀고, 평균 90점이 넘으면 상장을 수여했다. K는 5통, J는 7통에 살았다. 남자아이들끼리 놀며 K에게 니가 정말 J를 좋아하지 않는 다면, 우리 랑 같이 찾아가서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고, 뺨을 때려라 라는 가혹한 시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T도 있었고, 나도 있었으면, 같이 어울리던 여러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K와 같이 J네 집 근처로 갔고, 그곳에서 J를 만나, 우리가 보고 있는 가운데 K는 J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말하고, J을 뺨을 때리려 했다. 그때 K의 동작이 느렸는지, 아니면 J의 동작이 빨랐는지(여하튼 둘 중 하나는 동작이 빨랐다.) K의 행동은 J에 의해 제지당했고,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고백을 하고 우리는 J의 집 앞 골목길을 떠난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땐 왜 그런 걸 시켰고, 또 왜 그런 걸 해서 보여줘야 했었는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우리의 놀림이 받기 싫어서 K는 속마음을 숨기고 J에게 모진 말과 행동을 한 게 분명하다. 친구들 사이의 놀림, 남자들만의 의리, 이런 게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위와 같은 사달이 났을 것이다. 미안하다 K.

왜 그렇게 너를 힘들게 했는지. 이제와 돌이켜 보면 다들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다는 핑계로만 사과를 하기엔 뭔가 빠진 것 같은데. K 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J와의 골목씬이다. 이게 나에게도 참으로 강렬했나 보다. 아직까지 이렇게 머리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그리고 너와 다른 추억은 사회과부도를 펴고 둘만 같이 했던 놀이. 백두산까지 인지, 북 어디 끝까지 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와 사회과부도를 가지고 참으로 재미나게 놀았는데. 부산에서 출발해서 주변 몇 CM안에 있는 도시를 연결해서 누가 빠르게 해당 목적지까지 가냐 이런 내기를 하는 게임이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 덕에 우리나라 도시가 어디 있는지 많이 알게 되었던 거 같고 그 영향이 나를 이 물류의 세계로 이끈 건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나비효과~. 나의 지리적 관심은 결국 나의 일평생 업을 삼게 할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로, 나비효과를 의심해 본다. 아니면 내가 여기 발 디딜 일이 없었을 것인데. 왜 나를 여기로 이끌어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 K랑 저 게임을 하지 말았 어야 했는데.

K를 생각하니 5학년 반장 S가 생각난다. K와 S는 둘이 절친이었고, S도 5통에 살고 있었다. 쓰다 보니 학연 지연의 향기가 솔솔 뭍 어나는 전형적인 꼰대의 글이 되어가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을 그렇게 타파하라 했거늘, 어릴 때부터 통별로 나눠서 놀고 있었네. 왜 이렇게 지연이 심한 가 했더니, 이게 다 초딩 때부터 이렇게 놀아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인가 보다. S의 소개는 여기까지 5학년 친구들 소개할 때 재 소환해서 이어 설명하겠다.

무려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말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난다. 옆에 K가 앉아 있는 거 같고, 방금 전까지 사회과부도를 펼쳐서 놀았던 거처럼 그 시절이 떠오른다.

K가 조선소 쪽에서 일한다고 아주 오래전에 들었는데, 그 소식 이후로 K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갑자기 K가 더 궁금해진다, 야 강아지 잘 살고 있냐?


강아지의 여사친 J는 20대 때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아이러브스쿨이 유행하던 시기, 우리도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이 만난다고 공지가 올라왔고 난 거기 가서 J를 볼 수 있었다. J는 그해 결혼을 한다고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해줬고, 신혼집은 대전이라고 했다. 여전히 똑 부러지는 스타일의 아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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