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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은 너무 어렵다(SS등장)

SS는 의리지!

by 시쓰남

(연재가 하루 지연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25년 9월 27일 아침 07시 32분


구름 낀 아침이다. 오늘은 대학동기 생일이 있는 날인데 SS였나? 가물거리는데 찾아보고 나중에 톡이라도 한통 보내야겠다. SS생일 축하해~라고 보내고 싶지만, 선배님 이랑 결혼을 해서 존칭을 써야 할 거 같다. 형수님 생신 축하드려요.


오늘 아침엔 떠먹는 요구르트 에피소드를 쓰려고 했는데, SS생일이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먼저 대학친구 SS를 소개하겠다. 아직 초등, 중고등 친구들이 중간에서 언제 자기 이름이 호명되나 기다리고 있을 텐데, 친구들아, 조금 기다려라. 오늘은 SS생일이니까. 먼저 소개할게.


SS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입학 후 신입생 환영회였던 걸로 기억한다. 작은 키에 날씬하진 않았고, 안경을 낀 여학우였다. 이름 소개를 하는데 나 XXX이야, 기억하기 힘들면 가수 주현미 있지, 주현미랑 연관 지으면 쉽게 기억할 거야.라고 소개한 부분이 또렷이 기억나며, 작년에 받아 아직까지 쓰고 있던 97년도 D대 다이어리에 이름을 적었다. 호탕했고, 남자동기 못지않게 주량이 센 친구였다. 난 그날 SS 때문에 초반에 너무 뭣 모르고 SS의 페이스를 따라가다 그날 밤 난 집으로 귀가하지 못했다.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땐 온갖 숙취와 텁텁함 그리고 불편함, 마지막으로 여기 어디지 하는 불길함과 불안함을 가득 안고 일어났다. 일어나자 학생회장님과 부회장님이 일어났어하며 반겨주던 곳. 바로 학생회실.

SS를 따라 열심히 처음 마셔보던 막걸리를 마시면서 필름이 끊겼나 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짐을 챙겨 수업을 들으러 갔더니, 다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한다. 쟤가 어제 그 앤가 봐, 뭐시기 거시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지네들끼리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지 갑자기 유명인사 된 건가? 기억에 없는 친구들이 잘 들어갔냐며 인사를 하고, 어제 너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며 인사하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다들 아시겠지만 필름이 끊긴 다음날이 정말 곤욕이다. 기억나지 않는 기억을 퍼즐 맞추듯 끼어 맞추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혼자 추측해야 되고, 가장 두려운 건 혹시 실수라도 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 이 불안감이 제일 무서운데. 수업에 들어온 동기들한테는 큰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있는 나를 보고 아직 술이 덜 깼네 왜 그렇게 많이 마셨냐고 핀잔주는 H군(춤꾼이며 재능이 많다)이 지나갔고,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끝이 나 집으로 가기 위해 방파제를 걸어 나가다 잠시 잊고 있었던 불안감을 만날 수가 있었다. 저 멀리 96학번들이 방파제 끝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나를 불렀다. “어이, 친구” 이거 무슨 소리인가 난 98학번이고, 형들은 97도 아닌 96학번인데, “저 말인가요?”라고 대답을 했지만, 나를 부르는 건지 아님 진짜 동기를 부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배 J는(여기도 춤꾼) 나를 부르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 옆 친구 J에게 물어보니 어젯밤, 그러니까 신인생 환영회 때 내가 나이를 말하고 다니면서, 같은 년도에 태어난 분들에게 모두 친구 하자고 다녔단다. 그래서 나와는 학년이 완전히 달랐던 빠른 78 생 형님들께도, 우리 같은 78인데 친구 아니냐며- 동방예절을 철저히 지켜온 내가 감히 이랬다는 게, 아마 술의 힘이었으리라- 친구 하자고 했단다. 꽤나 이걸 술 마시며 여러 선배들한테 한 모양이다. J선배 말고도 다른 선배들도 지나가며 볼 때면 “친구” 이러면서 놀리곤 했었다. 아 이날의 실수는 나잇값 해달라고 선배들에게 진상을 부리고 은연중에 동기들보다 나이 많으니 알아 서들 잘해줘라 뭐 이런 나름의 PR을 했다는 게 실수였다. 아~꼰대. 이때부터 꼰대의 기질이 있었구나. 그 이후로 막걸리는 마시지도 않았고, 최근 들어서야 정말 가끔씩 한두 잔씩 하는데, 이 모든 사달은 SS 때문에 일어난 거라 난 의심치 않는다. 덕분에 이상하게 광고가 되어 얼굴이 많이 팔렸고, 점심시간쯤 지나가는 선배들이 날 알아보고 밥 먹으러 가자고도 하고 내가 밥 사달라고도 해서 많은 덕도 보기도 했다. 이건 SS와 엮이며 좋은 점이었던 것 같다.


SS도 나와 같은 Y섬 출신이었다. 여기서 군산에서 그랬듯 지역 주의가 또 나오는데,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는데 유독 Y섬 출신이거나,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친구들을 보면 반가웠다. 가을이 왔을 때는 이 친구들과 어울려서 Y구민 소풍을 가기도 했다.

SS는 내가 군대 가기 전 군주를(군대 가기 전 마시는 술) 같이 마셔 줬었고, 내가 복학해서 가끔 술 마시고 싶을 땐 SS집 근처에 찾아가 술을 얻어 마시는 그런 여자사람 친구였다. 절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고, 혹시나 내가 만약에 어쩌면 아무 라이도 결혼을 못하면 한번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배필이 아닐 까는 잠깐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SS는 먼저 시집을 갔고, 나도 다행히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SS는 지금 전라도에 거주하고 있고 큰 딸과, 아들 그리고 선배형님과 잘 살고 있다. 가끔씩 선배형님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군주를 할 때 SS와 J, 나 셋이서, 학교 앞 하리에서 술을 마셨다. 마시다 안주를 사들고 캠퍼스의 낭만을 느껴 보자며, 몇 없는 잔디밭을 찾아 밤늦게 학교로 들어왔다. 학교 주변은 공사가 한창이었고, 우리는 공사판 주변 풀밭에 앉아 술을 마셨다. 난 대학에 들어가면 잔디밭에 앉아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정말 기대했는데, 여기 입학했을 때 잔디밭은 없고 대신 어디에도 없을 바다와 자갈마당이 있는 모습에 나의 로망이었던 잔디밭의 추억은 산산조각 났다. 그래도 마지막 군대 가기 전 로망을 한번 실현해 보기 위해 다시 학교로 들어와 풀밭에 앉아(잔디밭 아님) 술을 마시며, 나의 얼마 남지 않은 입대를 아쉬워하며 건배를 하였다. 그때 선배형님을 만났고(대학원생이었다) 거기서 뭐 하냐며, 이래저래 해서 곧 군대 가는데 술을 마시고 있다 말씀을 드렸고, 형님은 주머니에 있는 꼬깃한 돈을 모두 꺼내 주었다. 우린 그걸 가지고 또 술을 사러 하리에 나갔고 돌아와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기억하 자며(필름이 끊기면 기억을 못 할 텐데) 버스도 끊겨 집에 못 간다고 첫차 올 때까지 추억을 불태우자 했다. 각자 주머니에 돈은 모두 다 꺼내서 선배형이 준 돈까지 더해 술을 마시는데 싹 다 써버렸다.

술을 마시는 중간중간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한참을 지나도 SS가 나타나지 않아 찾으러 다니는 등 술을 마시면서도 이런저런 깨알 같은 에피소드를 만들며 우리는 술을 마셨다.

첫 소개가 술인 센 친구라고 한 게 과장이 아님을 아시겠죠.


아침이 와서 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방파제를 걸어 나왔다. 그때 우리가 어제 차비까지 모두 탕진한 걸 안 우리는 어떻게 집에 가야 하나를 잠깐 고민했지만,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교통카드. 부산에서는 그때 교통카드가 일반화되고 있었다. (작년까지 토큰을 내고 탔었는데 1년 사이 교통카드라니, 정말 기술의 발전이 무섭다.)

J가 큰소리로 자기 교통카드가 있으니 버스 태워 주겠다 했는데, 주머니를 뒤져도 카드가 나오지 않았다. 어제 술을 마시며 흘린 거였고, 우리는 다시 학교로 들어가서 우리의 추억을 만들었던 풀밭과 오고 간 자리를 비디오 테이프 돼 감 듯 뒤로 돌리면서 한 곳 한 곳 찾아 나섰다. 다름 아닌 풀밭(잔디밭이면 더 좋았을 텐데)에서 우리는 J의 교통카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방파제를 다시 나가며 나의 군주는 마무리되었다. 나의 군주까지 참석해 준 SS. 정말 고맙다. 요즘은 형수 님이라고 호칭하지만, 오늘은 옛 추억의 동기로 호명하는 거니 SS라 하겠다. SS와 함께 해준 J는 잠시 기다려주라. 다음에 이야기해 줄 테니, 아직 어릴 적 친구들이 대기표 뽑고 기다리고 있다.


떠먹는 요구르트 쓰려다 갑자기 오늘 SS생일인 게 생각나서 요구르트 에피소드를 쓰진 못했는데 이건 곧 써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SS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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