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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16. 2017

은교

늙음에 관하여

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일, 김고은, 김무열


이 영화를 보면서 '이누도 잇신' 감독의 '금발의 초원'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기본적인 설정이나 느낌 같은 것이 닮은 영화인 것 같다. 특히 여고생이 노인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노인과 교감을 나눈다는 점이 그렇다. 물론 금발의 초원에서 노인은 '젊은이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 치매에 걸린 노인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금발의 초원은 만화가 원작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금발의 초원'에서 받은 감동이 조금 더 진했고 여운이 더 짙게 남아있다.


영화 은교

은교는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읽어보진 못했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가 너무 은교와 이적요의 에로티시즘, 로리타에 맞춰져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원작 소설의 저자인 박범신 역시 그런 부분에서 실망을 했다고 한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지라, 소설과 얼마나 다른지 비교가 불가능하다. 사실 좀 과한 느낌은 없잖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대로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든다는 것의 서글픔 같은 것이랄까. '청춘'에 대한 동경이랄까. 그런 것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린시절에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또 원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꿈꾸던 미래도 막연하게 눈앞에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됐을 무렵에도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었고,  자유는 점점 더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어린시절에는 자유롭고 싶어서 어른이 되기를 꿈꿨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나마 '자유'로웠던 어린시절을 그리워 한다.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눈앞에 없는 것을 갈망하게 되어 있나 보다.


대체로 사람들은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상은도 이렇게 노래했나 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고.


영화 은교

어쩌면 이적요에게 은교는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독 속에 웅크리고 있던 - 이적요 앞에. 세상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한곳에 뿌리 박기를 좋아하는 나무 같은 사내 앞에.


영화 은교

그러니까 너무 늦게 온 것이다. 은교는. 봄바람처럼 뺨을 간지럽히며 은교는 그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청년' 이적요를 마구 흔들어 대고, 기어이 그 속에서 끄집어 낸다. 잎사귀들이 봄바람에 몸을 흔들고, 빛을 받아 반짝이듯 이적요의 어두운 마음에 전등이 켜지고 청년 이적요가 늙은 육체 안에서 깨어난다.

어쩌면 은교는 이적요의 뮤즈였고,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그가 젊은 육체를 탐한다기보다는  은교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적요의 정신은 누구보다 젊고 아름다우나, 그의 육체는 늙고 말라비틀어져 있다. 늙은 육신에 담긴 젊은 영혼은 그래서 아프다.


영화 은교

그래서 그는 상상 속에서 은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는 은교에 대한 감정을 마음 속의 비밀 상자에 넣어 두고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내려 간다. 그것은 그만의 비밀이었고, 자신만을 위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의 애제자(서지우)가 그의 육필 원고를 발견하고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한다. 그는 이적요의 미발표 원고로 이상 문학상까지 수상한다.


사실, 이전에도 그가 쓴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해 (이적요는 그에게 대필을 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하고 그는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부와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그 대가로, 늙은 노시인의 곁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그를 보필한다.


영화 은교

이적요는 자신만의 비밀 이야기를 세상에 까발린 서지우에게 화를 내고, 서지우는 이적요에게 어차피 발표하지 못할 이야기가 아니었느냐며, '은교에 대한 그의 감정'을 '더러운 스캔들'로 매도한다. 서지우에게는 오직 젊음만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무기'이다. 이적요는 은교를 사랑하지만, 마음을 드러낼 수 없다. 그런 그의 마음을 잘 아는 서지우는 늙은 육체에 담긴 젊은 영혼의 이적요를 아프게 찔러댄다. 이적요는 어느 해 겨울 자신의 생일에 집에 찾아온 은교와 짧고 깊은 포옹을 한다. 그리고 은교를 자신의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낸다.
 
이적요에게 작별 인사를 한 은교는 서지우에게로 가, 사랑을 나누고 - 이적요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서지우는 이적요가 가질 수 없는 젊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이적요가 서지우에게 유일하게 질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젊은 육체이다.


이적요는 서지우의 차를 고장 내고, 서지우는 정비소에 갔다가 이적요가 자신의 차를 고장낸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한다. 이적요는 그간 자신이 써온 '은교'라는 소설의 원고를 불태운다. 서지우가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한 그 미발표 원고를. 서지우는 흥분해서 이적요의 집을 찾아가다 교통 사고가 나서 죽는다. 은교는 '내가 서지우를 죽였다'는 이적요의 음성 메시지를 받고 그 길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계절은 바뀌어 다시 겨울이 오고 은교는 예전처럼 다시 살아간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은교'라는 소설을 '이적요'가 썼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대학생이 된 은교는 안개꽃을 사들고 이적요를 찾아가지만 이적요는 거의 폐인이 되어 있다. 술을 마시고, 시도 쓰지 않고 살게 된 것이다. 잠들었는지, 죽었는지 모를 이적요의 등 뒤에 누워 은교는 흐느낀다.
 
은교가 인사를 하고 사라진 후 그는 신음처럼 '은교'의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느끼게 되는 '살아있음의 기쁨' '생명에의 기쁨'이 찰나의 빛으로 사라진 그 순간, 이적요는 그 누구보다 힘 없고 늙고 초라한 자신의 시든 육체와 조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 속에서 이적요는 말한다. "나 이적요는 늙었습니다. 늙는다는 것, 이제껏 입어본 적이 없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이라 시인 로스케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고. (이 로스케라는 시인은 시어도어 로스케를 말하는 것 같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적요로운 삶- 그 쓸쓸함이 내게 이 영화의 잔상으로 오래도록 깊게 남아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는 깊고, 진하다. 그리고 딱 그만큼 쓸쓸하다. 가을에 봐도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그러고보니 이 영화는 딱 가을 느낌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좋은 시절을 보내고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가 되는 삶. 이적요에게 '봄'을 빼앗아 간 것은 어쩌면 은교도, 서지우도 아닌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니까. 나이 든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 같지만, 어쩌면 '영혼에 생기'를 잃어버릴 때 죽음과도 같은 나무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침묵이 되어버리는 시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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