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고 조용한 친구 같은 포르투

여행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by 심루이


1.

포르투갈의 첫인상은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리스본 공항의 큰 광장에 사람이 꽉 차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 볼륨을 아주 작게 줄여놓은 듯 시끄럽지 않았다. 사람들도 한층 더 친절했다. 스페인이 자신감과 자만심으로 가득 찬 놀기 좋아하는 친구였다면 포르투갈은 겸손하고 사려 깊은 조용한 친구 같았다. 유행하는 MBTI 유형으로 나눠 보자면 스페인은 외향적인 E 형이고, 포르투갈은 내향의 I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세비야-포르투 직항 비행기 스케줄이 맞지 않아 리스본을 경유해 포르투로 가는 노선을 선택했다. 포르투 여행 후 다시 리스본으로 와서 인천으로 아웃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책상 위에서 티켓팅을 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하려고 보니 만만치 않았다. 비타민을 열심히 챙겨 먹으며 느슨한 일정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도 아이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항 버거킹에서 치킨윙을 먹고 너무 맛있다며 엄지 척을 날리는 아이의 해맑은 표정을 보니 아이는 확실히 유적지 투어보다 공항을 더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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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트와인으로 익숙한 포르투는 포르투갈의 제2의 도시이자 가장 아름다운 소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늦은 밤, 포르투 호텔에 도착하니 달콤한 에그타르트가 놓여 있었다. 포르투갈에 왔으니 에그타르트와 포트와인을 마음껏 즐겨야지! 노곤한 몸에 달콤함이 스며들자 벌써부터 포르투갈을 좋아하게 된 것만 같았다.


다음 날은 일찍 일어나 포르투의 올드타운을 산책했다.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인 '아줄레주'로 뒤덮여 있던 상 벤투역이 첫 시작이었다. 상 벤투역의 아줄레주는 '조르즈 콜라수(jorge Colaco)'의 작품으로 1415년 세우타 점령 등 포르투갈의 역사적 장면들이 표현되어 있다. 기차 이용객보다 관광객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바로크 양식의 클레리구스 성당과 종탑을 지나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에게 호그와트 마법 학교의 영감을 주었다는 렐루서점까지 걸었다. 렐루 서점 내부 관람은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는데 나는 역시 예약을 하지 않았고 엄청난 관광지로 변해버린 서점을 밖에서 한참 구경했다.


렐루 서점 근처는 예능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의 촬영지라 익숙했다. 카르무 성당까지 가는 길에 비긴어게인 포르투갈 편에 출연한 자우림의 <고잉홈>을 들으며 감성을 충전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카르무 성당 외벽의 아줄레주는 1912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넓은 면적에 한 주제를 크게 그리는 1700년대 전반기의 스타일이다. 카르무 성당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포르투 대성당까지 찬찬히 걸으며 포르투를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포르투의 올드타운은 생각보다 폐가나 폐건물도 많고 낡은 모습이었는데 그것이 싫지 않고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푸른 빛의 아줄레주가 도시에 낭만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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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르투의 첫 번째 식사를 하기 위해 최고 인기 식당이라는 타파벤토(Tapabento)를 찾았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 힘든 맛집이지만 12시 오픈런을 한 결과 1시 30분까지 식사를 하는 조건으로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포르투갈식 해산물 스튜 카타플라나와 대구를 소보로로 감싼 요리다. 카타플라나는 우리나라의 해물탕과 비슷해서 입맛에 딱 맞았고 할머니 사장님의 친절은 다정했다. 포르투갈 음식은 스페인 음식보다 한국인에게 더 찰떡이라는 후기들이 많았는데 틀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드라이한 화이트 포트와인을 한잔했는데 해산물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찾은 곳은 히베이라 광장이다. <포르투갈, 시간이 머무는 곳>에서 최경화 작가는 '포르투에 도착하면 히베이라 광장의 벤치나 근처 카페에 앉아서 먼저 내 몸의 주파수를 포르투의 주파수에 맞춘 뒤 여행을 시작하라'고 권했는데 직접 찾아가 보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도우루강에 인접해 각종 유명 포트와인의 저장소가 있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구가 한눈에 보이고, 테라스에서 다들 와인을 즐기고 있으며, 곳곳에서 퀄리티 있는 공연까지 벌어지는 히베이라 광장은 포르투의 자유로운 감성과 매우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히베이라 광장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것이 포르투의 진짜 주인공인 동 루이스 1세 다리다. 히베리아 지구와 가이아 지구를 잇는 아치형 이층식 철교로 1886년에 완공됐다. 증축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길이로(상층 385m/하층 172m) 흉물이라는 의견도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포르투의 완벽한 풍경을 완성시키고 있다. 1996년에는 ‘포르토 역사지구(Centro Histórico do Porto)’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이 다리 위로 전철과 사람이 함께 다닌다. 상층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소름이 끼칠 만큼 아찔한 높이지만 우리는 신나게 걸어 다녔다. 경사가 심한 도시답게 포르투에는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는데 동 루이스 1세 다리에서 바탈랴를 연결하는 푸니쿨라가 대표적이고, 케이블카와 트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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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753~photo.JPG 타파벤토에서 미식
IMG_0876~photo.JPG 히베이라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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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 포르투 (12).jpg 동 루이스 다리 위

4.

두 번째 숙소였던 <빈치 폰테 데 페로>라는 호텔은 동 루이스 1세 다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방에서 동 루이스 다리가 바로 보이며, 아랫동네와 윗 동네를 연결해 주는 신박한 엘리베이터까지 있어 묵는 동안 200% 만족했다. 소파에 기대 책과 차창의 풍경을 번갈아 바라보며 빈둥거렸다.


호텔 바로 앞에는 모루 공원이 있는데 일몰 시간이면 맥주를 손에 든 몇 백 명의 인파가 이곳으로 속속 모여든다. EDM 멜로디가 쿵작쿵작 흘러나오는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사랑하는 사람과 수다를 떨고... 각자의 행복으로 이 시간을 마음에 새긴다.


모루 정원 노을 파티의 최연소 참가자는 두 발짝 앞 커플 품에 안겨 있는 신생아였다. 이 세상에 나온 지 불과 몇 개월도 되지 않았을 것 같은 그 아이와 함께 포르투의 환상적인 노을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심이도 아이가 신기하고 귀여운지 연신 손을 흔들었다. 신생아의 엄마, 아빠는 아이를 안고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예전에 아이를 키우지 않았을 때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부모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는 기억도 하지 못할 텐데 뭐 하러... 아깝게... 뭐 그런 편협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부모가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그 떠남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며 그저 떠남을 좋아하는 부모를 위한 일이다. 여행지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육아(우리는 한때 그네에 환장한 아이를 위해 제주도에서 그네만 찾아다녔으며 오키나와에서는 하이쮸 미니 공장에 들렀고 무제한 와인파티에 참석해 보려 두 시간 동안 아이를 재우다 실패하고고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있다.)에 지쳐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돌아오더라도 영혼만은 충만해진다는 걸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은 안다. 우리는 그 충만함을 새로운 원동력 삼아 다시 육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러니 여행을 사랑하는 부모들이여, 여행의 본전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떠납시다.

IMG_E7967.HEIC 오른쪽 아래 주황색 지붕이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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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E7551.HEIC 호텔에서 바라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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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 포르투 (2).HEIC
포르투갈 여행 포르투 (21).jpg 모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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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 포르투 (6).HEIC 포르투의 야경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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