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도시
1.
알콜애호가에게는 낮술과 반주가 일상인 이베리아반도만큼 좋은 여행지가 없다. 심지어 네르하 파라도르에는 조식에도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
우선 에스트렐라 담과 모리츠(바르셀로나), 알람브라(그라나다), 크루스캄포(세비야) 등 스페인 지방의 다양한 세르베사(맥주)가 있다. 맥주 사이즈는 가장 작은 까냐(Cana), 컵이 긴 투보(Tubo), 500ml 사이즈인 하라(Jarra), 병맥주인 보테야(Botella)로 나뉘는데 때로 물보다 까냐가 저렴할 때도 있으니 안 마실 이유가 없다. 바스크 지방에서는 까냐가 아닌 수리토(Zurito)라는 이름으로 생맥주를 판매한다.
12년 전, 작열하던 스페인 태양 아래서 마셨던 클라라(레몬 맥주)의 시원함을 오래 잊을 수가 없었던 우리는 귀국 후에도 한동안 레몬맛 소다에 맥주를 섞어 마셨다. (맥주와 레몬 소다 혹은 레모네이드 비율은 1:1이다) 광화문 독립서점 북바이북에 굳이 들린 이유도 그곳에서 파는 맛있는 클라라를 마시기 위해서였지. 무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맛이다.
와인에 사과, 오렌지, 레몬 등의 과일과 탄산수를 넣어 차게 마시는 샹그리아도 있다. 예전에 일했던 카페에서 샹그리아를 직접 만들어 팔 정도로 애정한 아이템이다. 스페인 샴페인인 카바를 넣은 샹그리아 또한 남다른 매력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눈 뜬 드링크는 틴토 데 베라노(Tinto de Verano)다. '여름의 레드와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술은 와인과 탄산수,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포인트다. 샹그리아보다 덜 달아서 입맛에 맞았다. 틴토 데 베라노의 화이트 버전으로 스페인 주정 강화 와인인 '셰리'에 탄산수를 섞은 것은 레부히또(Rebujito)다.
춘은 포도주에 브랜디, 각종 향료와 약초를 넣어 향미를 낸 식전주인 베르무트(Vermut)를 좋아했다. 어원은 '향쑥'의 독일명 베르무트에서 왔으며 말라가의 <카사 로라>, 세비야의 <바 엘 코메르시오> 등 매장에서 직접 베르무트를 제조하는 곳이 많았다. 어릴 때 먹던 감기약 느낌이 있다.
진지냐(Ginjinha)는 오비두스 지역의 특산품으로 체리와 설탕을 넣어 만든 포르투갈의 전통주다. 리스본 곳곳에서 초콜릿 잔에 담긴 진지냐를 만날 수 있다.
즉석에서 갈아주는 오렌지 주스인 수모 데 나랑하(Zumo de Naranja)는 가격도 저렴한 데다 끝내주게 상큼해서 될수록 많이 마시는 것이 이득처럼 느껴진다. 오렌지 함량 8%에 빛나는 오렌지 환타도 빼놓을 수 없다.
2.
세상에서 포도 재배 면적이 제일 넓은 나라인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는 리오하다. 리오하 와인은 숙성 정도에 따라 호벤, 크리안사, 레세브라 등 네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마켓에서 저렴하게 리오하 와인을 사서 호텔에서 마시는 기쁨을 누려보자.
이베리아반도하면 주정 강화 와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 스페인의 '셰리'와 포르투갈의 '포트'가 세계 2대 주정 강화 와인이다. 주정 강화 와인은 백년 전쟁의 패배로 고품질의 포도주를 즐길 수 없게 된 영국 귀족들이 새로운 와인 시장인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눈을 돌리며 탄생했다. 장거리 운송과 고온에 와인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알코올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와인에 섞었다. 코냑 같은 브랜디가 들어간 만큼 일반 와인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18% 이상으로 높고 달달하다. 브랜디가 효모를 파괴해서 아직 발효되지 않은 포도의 당분을 살아남게 한다.
셰리 와인이 발효 후 브랜디를 첨가한 주정 강화 와인이라면 포트 와인은 발효 중에 브랜디를 첨가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드라이한 셰리는 주로 식전 와인으로, 보다 달콤한 포트 와인은 식후주로 많이 쓰인다.
포르투 도우루강 상류에서 만들어진 고품질 포트 와인을 통칭해 '포르투'라 이름 붙였다. 포트의 집산지이자 수출항 이름을 브랜드화한 것이다. '라가레스'라고 불리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통에 포도를 넣고 발로 으깨는 방법이 전통적인 포트 제조법인데 포르투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하며 영상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3.
인상적이었던 페어링은 스페인 세비야의 카페 <바 엘 코메르시오(Cafe Bar EL COMERCIO)>에서 맛본 하몽과 베르무트다. 짠내투어에도 나온 세비야에서 가장 유명한 츄러스 가게인 이곳은 츄러스보다 하몽이 더 맛있었고 직접 제조하는 베르무트도 좋았다.
테일러 와이너리 투어가 끝난 밤에는 포트와인의 여운을 잊지 못하고 포르투 가이아 지구에 위치한 <바칼호이토(BACALHOEITO)>의 야외 테라스에서 심이 팔목 굵기와 비슷한 문어 스테이크, 상큼한 문어 샐러드와 함께 페레이라 화이트 드라이 포트와인 한 병을 순식간에 비웠다. 그림 같은 도우루 강 야경과 시원한 바람까지 함께라 완벽한 밤이었다.
리스본 정어리 구이 맛집인 <Tu & Eu>에서는 그린 와인에 취했다. 이곳에서 그린와인을 처음 마셨는데 살짝 신맛이 감도는 그린와인과 조금 탄 정어리 구이, 제육볶음을 닮은 이베리코 피카 파우가 잘 어울렸다. 포르투갈 북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그린 와인은 포루투갈어로 비뉴 베르데(Vinho Verde)다. 북서부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완전히 익지 않은 어린 포도를 수확한 후 짧은 숙성(3~6개월 정도)을 거쳐 병입하는데 포도가 덜 익은 상태에서 만들어 신맛이 강하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오랜 베이징 생활로 신맛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틀 연속 즐겼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