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느껴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니.
1.
김연수 작가는 <지지않는다는 말>에서 여름의 대만을 이렇게 표현했다.
-얼마 전에 나는 타이완에 다녀왔다. 그 여행의 교훈은 제정신이라면 여름에는 타이완을, 그것도 타이베이를 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옷을 갖춰 입고 찜질방 불가마 속을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 대충 8월의 타이완 여행과 비슷하리라. 그럼에도 나는 그 찌는 듯한 더위를 웃으면서 견딜 수 있었다. 왜냐하면 타이페이 타오위안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그 여행이 나흘 뒤면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죽기 전에 내가 다시 타이페이를 방문할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는 그런 질문을 자주 던지기 때문에 영혼이 깨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마 평상시에도 그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진다면, 누구의 영혼이라도 깨어나리라.
옷을 한껏 갖춰 입고 찜질방 불가마를 걷는 모습을 상상하며 깔깔 웃었다. 그때 이후 내게 대만이라는 나라는 찜질방 뺨치게 더운 곳으로 각인돼 일 년 내내 무더운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대만을 처음 찾은 12월, 겨울의 대만은 찜질방 불가마가 아니었다. 날씨 앱에 적힌 기온은 15도인데 왜 이렇게 추운 거지? 역시 습도가 높아서일까. 하루에 한 번씩 내리는 부슬비도 추위를 거들었다. 날짜별로 챙겨온 옷들을 모두 껴입고 한 마리 곰처럼 뒤뚱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경량 패딩 하나만 챙긴 춘은 결국 야시장에서 두꺼운 점퍼와 기모 후드를 구매했다.
비가 흩날리던 날씨는 여행 5일째부터 햇살이 내리쬐면서 한낮에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밤이 되면 꽤 쌀쌀해져서 기모가 달린 무언가를 입어야 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우리를 스쳐갔다. 아주 짧게 느낀 대만의 햇살이지만 예상할 수 있었다. 여름에는 진짜 장난 아니겠구나.
2.
두 번째로 찾은 9월의 대만 햇살은 강렬했다. 전철에서 내려 거리로 나가는 순간 엄청난 더위가 우리를 덮쳤다. 9월 햇살이 정도라면 한여름에는 정녕 어떻다는 말인가? 네... 아마도 찜질방.
<혼자라니 대단히 멋지군요>의 작가 안나도 6월의 대만을 겪고 이런 문장을 썼다.
-왜 대만 사람들은 이런 날씨를 견디며 사는가? 왜 정부에 항의를 하거나 시위를 하지 않는가? 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가? 이런 되도 않는 의문을 계속 떠올리며 간신히 돌아다녔다.
가습기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기분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더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래전 베트남에서 8월의 어느 오후, 나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이 더위에서는 한 발자국도 더 걸을 수 없어! 나는 걷지 않고 수영을 하기로 했다. 수영복도 없어서 빌려야 했고, 심지어 친하지 않은 동행이 있었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만큼 더웠다. 엄청난 더위는 모든 체면을 던져버린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베트남을 떠올리면 몸에 맞지 않는 수영복을 입고 어색한 지인들과 신나게 첨벙거렸던 그 오후가 떠오른다. 대만의 여름도 아주 비슷한 모양이다.
진짜 대만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여름에 대만으로... 아니다. 나는 대만 사람들처럼 너그럽지 않으니 폭동을 일으킬지도. 김연수 작가도 말하지 않았던가. 제.정.신이라면 한여름의 대만에는 가는 것이 아니라고.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만만치 않았던 대만의 9월. 실내로 자주 대피해야 했고 수영할 시간이나 있겠어,라며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은 스스로를 반성했다. 더위에 지쳐 어느 쇼핑몰에 주저앉은 심이는 대만 사람들은 더위를 잘 안 타나 봐, 하고 내뱉었다.
결론은 대만의 날씨는 오묘한 구석이 있으니 겨울의 대만이라면 바람막이와 머플러를 포함해 다양한 옷들을 여러 개 챙기자. 한여름의 대만에는 제정신이라면 가지 않는 것을... 아니, 실내 일정을 잘 짜보시는 것을 추천.
있는 옷을 모두 껴입은 겨울의 대만을 지나
가벼운 차림 9월의 대만으로.
두번째 타이베이를 만나자마자 마주친 하늘
매일 걷고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