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타이난-가오슝 밍수 맛집들
1.
최사리, 손아무, 심사전 등 언니들의 대만 여행기를 기록한 <언니들의 여행법>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토마토도, 사과도, 수박도 리리에서 먹으면 다르다. 구아바, 망고, 키위, 파파야, 옐로멜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게 과일이 아닐까? 앙증맞은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이제 언니들의 영혼은 리리에 있다.
대만에서는 1일 1 망고빙수 하는 걸 추천한다. 1일 1 밀크티도. 가성비 끝내주게 바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니까. 가게마다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엄청나게 맛있다는 것.
12월에 떠난 첫 대만 여행, 겨울의 타이베이는 예상보다 추워서 당황했지만 '우리는 역시 대만은 망고빙수기!'를 외치면서 융캉제 스무디하우스로 직행했다. 망고빙수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핫플이었지만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망고빙수를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굴하지 않고 제일 유명한 망고빙수를 주문했다. 망고 푸딩과 아이스크림까지 얹어서 푸짐하게 서빙된 망고빙수를 앞에 두고 처음에는 맛만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듯 한 번 숟가락질을 시작하니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분명 때는 겨울이라 냉동 망고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아삭한 식감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 왜 때문이죠. 결국 우리는 망고는 망고라서,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이라서, 푸딩은 푸딩이라서, 얼음은 눈꽃얼음이라서 남김없이 먹다가 입술이 보라색이 됐다. 기모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떨고 있는 서로의 꼴이 어찌나 우스운지 갑자기 배가 찢어져라 웃기 시작했다. 너 진짜 웃겨, 엄마가 더 웃겨, 니네 둘 다 진짜 웃겨...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같은 빙수를 여름에 다시 만나니 차가운 망고빙수를 먹고 있는데도 땀이 줄줄 흘렀다. 분명 더위에 맞서며 먹는 차가운 빙수가 더 맛있어야 하는데 비 내리던 추운 겨울날의 '이냉치냉' 빙수가 더 생각나는 건 왜일까.
2.
<언니들의 여행법>에 언급된 타이난의 '리리과일점'의 망고빙수와 생강 토마토 조합도 환상적이었다. 리리과일점은 빙수도 훌륭했지만 꿀에 간 생강에다 감초가루를 푼 소스와 함께 먹는 토마토의 맛이 더 강렬했다. 초록과 레드가 절반씩 섞여 있는 아름다운 토마토에 소스를 듬뿍듬뿍 찍어 먹었다. 생강? 싫어...라고 내빼던 심이도 한 입 맛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다. 좋아하는 유튜버가 한 말처럼 대만은 '생강을 먹게 하는 희한한 나라'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현지인 커플은 야외석에 앉아 조용히 빙수 한 그릇씩 깨끗하게 비우고 핑크색, 연두색 헬멧을 집어 들었다. (대만에는 예쁜 헬멧이 정말 많다) 남자친구의 허리 춤을 꼭 붙잡고 슝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떠나는 커플의 모습이 마치 대만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토마토를 입에 물고 넋 놓고 바라봤다.
타이난 션농지에 근처 '이핀탕(일품당)'은 아몬드 치즈가 더 유명한 곳이니 아몬드 치즈 토핑의 망고빙수를 먹도록 하자. 주먹만 한 숟가락으로 망고빙수를 먹고 있으면 사장님이 망고주스가 든 빨간 통을 들고 "노 슈가, 노 슈가"라고 말하며 안 그래도 맛있는 빙수 위에 망고 주스를 한가득 투척해 주신다. 유튜브에서 이미 보고 간 루틴이라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다. 지금쯤 친절한 사장님이 다가오실 건데 대사는 노슈가, 노슈가야. 밝은 미소와 감사 인사를 준비하자고.
최고의 빙수는 가오슝 빙수 거리의 '하이즈빙'이었다. 전혀 시지 않은 망고와 눈꽃 얼음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1인분을 시켰더니 턱없이 부족해 결국 추가 주문을 두 번이나 했다. 먹거리가 많아 하루 7끼를 꿈꾸는 대만에서 3번 연속 주문은 최고의 극찬이다. 하이즈빙의 망고빙수와 가오슝 루이펑야시장의 숯불 꼬치, 타이베이 시먼딩의 아종면선만이 그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당신도, 당신에게 맞는, 단순하고도 즉각적이며 쉬운 위로 하나를 꼭 찾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순간순간 스스로의 구원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민철,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새콤달콤한 망고빙수 앞에서 우리는 아주 쉽게 행복해졌고 쉽게 위로받았다. 순간순간 스스로의 구원자가 됐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