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가 돌아갈 집이란 사람의 마음
1.
새로운 곳에 들떠서 갔는데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여기 강촌 어디 같은데?"
"이거 한국에서도 많이 먹어본 맛인데?" 혹은 "한국에 있는 땡땡이 더 맛있다"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본인의 감상을 얘기하며 지금 이 순간을 폄하한다. 파리 어느 해변은 광안리 같고, 타이베이 망고빙수는 냉동이라 별로고, 건대 양꼬치 골목에서 파는 우육면이 더 맛있는 세상. 그런 기준이라면 세상 어느 곳에서 설렐 수 있을까. 행복의 역치가 유난히 낮아 감탄이 제일 쉬운 내게 그런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뭉클한 마음에 얼음 얹기' 정도의 고문. 그에게 카이오와족 큰구름이 한 말을 전하고 싶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슬픔을 준다."
2.
만난 지 18년, 부부가 된 지 15년 차인 춘. 핸드폰 이름 저장은 '너 좋은 대로'라고 바꿔야 할 정도로 춘은 내게 늘 맞춰준다. 원하는 목적지도, 물욕도 없는 사람. 별책부록은 '난 다 좋아' 정도.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은 나라는 사람을 만나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던 사람인지도 희미할 만큼의 오랜 시간이 우리에게 흘렀다. 가끔은 '절대 의견 없음'의 상태가 답답할 때도 있지만 답답함은 짧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즐거움은 길다. 내 지도 앱에는 무수한 별이 떠 있고(서울의 별은 벌써 천 개가 넘었다) 매력적인 목적지는 지금도 쉴 새 없이 생성되고 있으니까.
그러는 사이 우리 산책과 여행은 매번 비슷한 모양이 됐다. 내가 목적지를 정하면 춘이 최적의 이동 경로를 찾는다. 그리고 그는 목적지가 별로든, 맛이 이상하든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성실하게 즐기고 성실하게 감탄한다. '의견 없음'으로 저항(?)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먹고, 찍고, 돌아다닌다. 새로운 곳을 마음에 담느라 정신없는 내게 '오는 길에 봤는데 그 카페도 니 취향일 것 같아'라던가 혹은 '저기 포스터에 쓰여있는데 오늘 여기서 플리마켓이 열린대'라고 정확하고 알맞은 정보를 넌지시 알려주는 대문자 T. 주로 내 뒤를 졸졸 따라오다 내가 지쳤음이 명백한 그 시간에는 갑자기 불쑥 앞장서서 '한 발짝만 더 가보자' 이끌어 주는 사람. 필름 카메라의 매력을 처음 알려준 것도, 세계 지리와 역사에 빠삭해서 여행지의 잡다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춘이다. 18년이라는 시간. 내가 감성이라면 그는 이성, 내가 꿈이라면 그는 현실, 내가 물이라면 그는 나무. MBTI는 단 한 글자도 맞지 않지만, 우리는 결국 그 다름을 기반하여 제일 좋은 친구이자 즐거운 여행 동반자가 됐다. 더 이상 혼자 하는 여행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도시의 골목들을 같이 걷고 많은 음식을 함께 먹었다.
처음에는 그의 건조하고 성실한 감탄을 이해하지 못했다. 좋으면 더 방방 뛰어야지! 그렇게 덤덤하게 좋아하고 차분하게 문제 해결에 골몰하지 말란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로봇 같은 한결같음이 이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그 귀한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이런 형태의 응원도 있다는걸. 그 무엇도 성실한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걸.
언제나 한 옥타브를 넘나들며 호들갑을 떠는 내 옆에서 '미' 정도의 잔잔함으로 내 곁을 지켜주는 춘의 뒷모습을 보며 자주 뭉클해진다.
3.
학교에 오래 빠지기 싫으니 서울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한 심이 덕(?)에 나는 20년 만에 혼자 여행을 하게 됐다. 나만 혼자 남는 건 내 선택지에는 없었는데 춘이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입으로는 '아냐, 나 혼자 남아서 심심해서 뭐해'라고 내뱉으면서 혼자 지내기 적당한 타이베이 숙소를 열정적으로 검색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꽤 설렜다. 드디어 그날! 역 근처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을 레이스 감자칩을 한가득 산 심이는 막상 나와 헤어질 시간이 오자 헤어지기 싫다며 눈이 빨개졌다. 짧은 헤어짐을 슬퍼해주는 아이를 보니 몽글몽글한 행복감이 차올랐다. 작은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백화점에 가는 것이 최고의 모험일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여행과 연관된 검색어는 모조리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으로 시작되곤 했었지. 그 지난한 시간을 지나 달콤한 시간에 당도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아이와 남편을 먼저 배웅하게 되다니!
오랜만에 혼자 하는 여행은 물론 좋았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가고 싶은 곳으로 걸었다. 아이 컨디션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밤늦게까지 체력을 마음껏 소진하며 놀았다. 오롯이 내가 결정하는 나만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혼자 여행하며 제일 좋았던 것은 두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이의 빈틈에서 진한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아, 심이가 이걸 먹었으면 엄지 척을 했겠네', 신기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걸 함께 봤으면 얼마나 낄낄거렸을까'라고 생각하며 셋이 함께 하는 기쁨을 자주 떠올렸다. '혼자가 제일 편하지 암요'라고 생각했던 나를 통과해 세 사람이 하는 우당탕탕, 시끌벅적 여행에 더 익숙해진 스스로를 발견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벅찬 일이었다. 덜 간편하지만 기꺼이 더 귀찮고 즐거운 우리가 되는 것, 그것이 삶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여행하는 2박 3일 동안 헤어지기 전에 찍은 눈과 코가 빨간 심이 사진을 자주 꺼내 보며 웃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이것저것 살피며 돌아가면 할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았다.
누군가와 기억을 나누지 않으면, 즉 누군가의 마음에 살지 않으면 살아도 살아있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기분을 자신이 스스로 이해해 주고 바라봐 주면 이내 괜찮아지지만 모든 순간을,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 새삼스러운 사실을 발리 여행에서 깨달았다.
<여행의 장면>
귀한 휴가를 희생해 기꺼이 내게 자유를 선물해 준 춘의 너른 마음 덕에 알 수 있었다. 누군가와 지지고 볶으며 함께 하는 여행의 의미, 서로를 보듬고 안아주는 마음 씀의 가치를. 결국 우리가 돌아갈 집이란 누군가의 마음이라는 것.
잘 먹고 잘 걷고 잘 웃는 그들은 이제 내게 너무나 완벽한 여행메이트. 20년 만의 혼자 여행을 즐겁게 끝내고 나는 이야기보따리를 한가득 안고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