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사올만한 것들
사실 펑리수는 나와 후배뿐만 아니라 타이완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기원하는 선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파인애플, 즉 '펑리'는 타이완 지역 방언 중 하나인 민남어로 읽을 경우, '번영하다, 왕성하다'라는 뜻의 '왕라이'가 된다. ... 이러한 의미를 모른다 할지라도 타이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인들에게 펑리수를 나누어 주고 있으니, 우리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축복을 건넨 셈이다. 의미를 모르면 그저 맛있는 간식거리에 불과하지만, 의미를 알고 나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너무나 행복해지는 펑리수. 조만간 '너의 반짝이는 미래를 축복해'라는 메시지를 담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해야겠다.
<언니들의 여행법>
1.
그곳에만 있다는 기념품, 특히 간식에 둔감한 편인데 대만의 간식들은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첫날 먹은 누가 크래커가 너무 맛있어서 지인들과 나누기 위해 잔뜩 사버렸다. 짭짤한 크래커에 달달한 누가를 끼운 스낵. 한 입 물면 짠맛이 먼저 느껴지고 그 사이에 단맛이 치고 올라오는 그야말로 단짠의 정석. 한 번 시작하면 쉽게 끝낼 수 없는 중독적인 맛이다. 단단함 속에 부드러운 파인애플 과육을 잔뜩 숨긴 펑리수는 또 어떻고. 펑리수를 깨물 때마다 안희연 시인의 '미결'이라는 시에 나온 애플파이를 생각한다. 시인은 애플파이를 먹으며 이런 시를 썼다.
반으로 갈린 사과파이가 간곡히 품고 있었을/물컹과 왈칵과 달콤,/후후 불어 삼켜야 하는 그 모든 것
사과파이의 영혼 같습니다/나를 쪼개면 무엇이 흘러나올지 궁금합니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물렁한 애플파이와 펑리수. 겉만 봐서는 쪼개면 무엇이 나올지 전혀 알길 없는 존재들의 영혼... 펑리수를 먹으며 펑리수의 영혼을 떠올리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세 개나 해치워 버렸다.
대만에는 써니힐스, 치아더, 치메이, 가빈명가, 썬메리 등 다양한 펑리수 브랜드가 있다. 조금씩 특색이 다르다지만 내 입에는 비슷한 느낌으로 맛있다. 노란 파인애플 캐릭터가 있는 썬메리는 패키지가 귀여워 선물하기 좋고, 써니힐스는 매장에 들리면 펑리수 한 개와 우롱차를 무료로 맛볼 수 있는 마케팅을 제공한다. 써니힐스 펑리수 한 개를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맛있는 걸 얼른 사자'라고 생각하게 되니 괜찮은 방법이다.
누가크래커 종류도 상당히 많은데 현재 대만에서 제일 유명한 누가크래커는 타이베이 융캉제의 <라뜰리에 루터스>인듯 하다. 르 꼬르동 블루 출신 셰프가 만드는 누가 크래커다. 저번 여행에서 구매를 실패해서 이번에는 가능하다면 남은 여정에 짐이 되더라도 사고 싶었는데 역시 오전 열시부터 걸려 있는 'SOLD OUT' 팻말. 8시부터 오픈런을 해야 한다고.
대만의 간식들은 '3시 15분' 밀크티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밀크티를 마시기 제일 좋은 시간이라 그렇게 정해졌다는 낭만적인 밀크티 브랜드명 3시 15분.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3월 15일 밀크티라고 했다가 심이에게 핀잔을 들었다. 하긴 밀크티를 마시기 좋은 시기가 일 년에 딱 한 번뿐인 3월 15일이라면 큰일이고 말고. 나에게는 생뚱맞은 단어를 말하는 병이 있고 그런 엄마를 가진 탓에 심이는 요상한 단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센스가 발전했다. 예를 들어 가끔 냉장고를 에어컨, 마술사를 마법사, 체험활동을 창조활동이라고 하는데 뭐든지 척척이다. 3시 15분도 3,1,5라는 숫자의 단서만으로 아주 시크하게 "3시 15분이겠지, 엄마!"라고 하는 아이. 이럴 때 역시 세상은 공평하게 잘 흘러가는 느낌이다.
2.
첫 번째 여행에서 또 구입한 것은 아리산 우롱차와 카발란 위스키다. 이상하게 중화권에 가면 차가 맛있어진다. 베이징에서도 아침에 눈 뜨면 바로 푸얼차를 끓였다. 한국에 가도 차 마시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해놓고 한국에서는 왜 커피에 먼저 손이 가는지는 모를 일이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위스키를 생산하는 3개 국가 중 하나다.카발란 위스키는 까르푸에서 구입하고 적은 금액이지만 택스 리펀도 받았다. 오래 숙성해야 좋은 맛이 나는 게 위스키인데, 얼마 되지 않은 카발란 위스키가 상당히 좋은 맛을 내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 킹카그룹 소유라니 역시 자본의 힘은 강력한 것일까. 융캉제 근처 '가품양주'라는 가게에 엄청나게 긴 줄이 있어서 찾아봤더니 주당들 사이에서 유명한 위스키 성지라고 한다. 희소성 있는 위스키를 사고 싶다면 가볼만하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 캐릭터 문화가 발달한 대만에는 예쁜 소품이 특히 많다. 타이베이 대표 소품샵은 융캉제의 라이하오, 바오맨션이다. 나란히 붙어 있으니 함께 들러보면 좋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 학교 앞 문구점 포스를 풍기는 공간도 꽤 많다. 세련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래되고 번잡한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꽤 즐겁다. 21만 원 상당의 여행 지원금을 직접 딴 덕에 소품샵에서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이성을 잃고 있는 심이를 발견했다. 친구들에게 각자 어울리는 지갑을 고르기 위해 들었다 놨다를 수십번 반복한다. 고민은 길었지만 기쁨은 컸다.
일 년에 220일이 넘게 비가 오는 대만의 또 하나의 특산품은 바로 우산. 가볍고 예쁜 우산을 취급하는 마마위산(우산)도 기념품의 좋은 옵션이 될 듯하다. 비가 올 때마다 대만을 떠올릴 수 있으니 낭만적이다. 여행을 가면 모으는 것들 중 냉장고 자석과 엽서가 있는데 위트와 감성을 겸비한 MIT(Made in Taiwan) 엽서와 자석을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코르도바와 시안, 타이베이가 나란하게 붙어 응축된 추억을 품고 자신만의 색깔을 뽐낸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곳의 간식을 하나씩 모은 꾸러미를 소박하게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는 걸 좋아한다. 대만 꾸러미는 펑리수, 누가크래커, 망고젤리, 3시 15분 밀크티, 아리산밀크티 티백이 담겼다. 펑리수를 주는 것은 작은 축복을 건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니 이보다 좋을 수가! 별것도 아닌 사소한 다정을 건네며 행복해진다. 역시 어떤 선물이든 받는 사람보다는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은 진리다.
3.
첫 번째 대만 여행 이후 가장 후회한 점 하나.
-누가 크래커 더 사 올걸!
대만하면 역시 파인애플 과자인 펑리수가 대표적이겠지만 내 입맛에는 누가 크래커가 더 맛있고 지인들 반응도 그쪽이 우세했다. 네 도시를 이동해야 하는 데다, 저가항공을 이용한 두 번째 여행은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저번에 카발란 위스키도 사고, 망고 젤리도, 우롱차도 샀으니 이번에는 뭐 살게 없지, 싶어 모든 여행객들이 들리는 까르푸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크래커는 사야지. 암요.
타이베이라면 아주 많은 종류가 있지만 가오슝은 그리 많지 않다. 가오슝 숙소 근처의 70년 된 노포, 라오지앙에서 샀다. 라오지앙은 대만식 아침 식사 맛집인데 누가 크래커 또한 맛있다. 10개 사면 1개 무료 제공이라 기쁘게 구입했다. 개별 포장은 아니지만 아주 추천입니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