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도서관로드
전주에서 기대한 또 하나의 도서관은 아중호수도서관. 2025년 6월에 개관한 음악 특화 도서관이다. 호수와 도서관과 음악이라니, 가기 전부터 벌써 이곳이 좋아지는 느낌. 여행 마지막 날 아침,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도서관을 찾았다. 아침도 먹지 않고 '멋진 곳을 보여주겠으니 나를 따르라'는 엄마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심이.
아중호수는 원래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였다. 아중호수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수변 산책로를 조금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아중호수도서관. 맑은 날씨를 기대했지만 비가 오니 운치가 더해진다. 아중호수 도서관은 흔치 않은 곡선형 도서관으로 마치 호수의 물결을 닮았다. 총 길이 101m, 소장 도서는 8천 여권, LP와 CD는 7천100여 점이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자유로운 좌석 세팅도 아중호수와 잘 어울린다.
아중호수도서관에는 턴테이블이 있는 별도의 청음 공간이 있다. LP를 들을 수 있는 도서관은 서울에도 꽤 많지만 호수 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듣고 싶은 음반 2장을 고르고 직원의 안내를 받는다. 1인당 이용 시간은 30분. 나만의 온전한 시간 안에서 흐르는 내면의 고요한 물결.
이 공간의 중심에는 오렌지빛의 강렬한 오디오가 있는데 이탈리아 명품 오디오 브리온베가 올인원이다. 유명 디자이너 카스틸리오니(Castiglioni)의 손길로 탄생한 이 오디오는 1960년대부터 사랑받아온 독보적인 디자인. 마치 웃는 표정을 지닌 이 오디오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쇼팽의 녹턴을 듣는다.
아중호수도서관의 공간들은 음악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공간은 뮤직(MUSIC)의 영문 앞 글자로 대표된다. 특별한 순간(Moment), 사람과 자연과 음악의 조화(Unison), 소리(Sound), 음악을 통한 영감(Inspiration), 그리고 교감(Communion).
큐레이션 또한 그렇다. 음악 특화 도서관답게 관련 자료들이 많고 음악 주제 큐레이션도 다양하다. '소설로 듣는 음악'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속에 나온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가 그곳에 언급되는 음악이 궁금해서 음악을 재생시키던 기억들이 겹쳐진다.
케이팝 문화에 대한 책 한 권과 문학잡지를 가지고 계단형 좌석 뒤 빈백에 자리를 잡았다. 빈백에 누워 좋아하는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윤슬과 하늘, 오늘의 비를 눈에 꼭꼭 담는다. 바로 옆 빈백에 파묻혀 몰입하고 있는 아이의 옆모습도, 이 공기도 꼭꼭 담는다. 문득 독서는 텍스트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찰나의 모든 것을 읽는 행위라는 생각을 한다.
김영대 음악 평론가의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 데이식스 추천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는데 그들의 노래를 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내게도 낯선 곡이 몇 개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한 곡씩 들어보다가 '좋아합니다'라는 노래가 특히 좋아서 반복 재생.
난 그대를 좋아합니다. 참으려 해봤지만 더는 안되겠어요.
이제야 말할 수 있겠어요. 사랑하고 싶어요. 그댈
솔직하고 귀여운 고백 가사가 인상적인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저도 고백합니다. 아중호수도서관. 좋아하고 싶어요. 주차장은 협소하지만 자주 오고 싶어요. 책에 진심인 전주에 빠져드는 중입니다.
+ 도서관 앞에는 주차 공간이 없으니 아중호수 공영 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도서관 앞에 주차하면 차를 빼달라는 방송이 고요한 도서관에 크게 울리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니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