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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혜 Oct 22. 2023

알아야 지지 않는다

2022년 수사권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검찰청법 개정안 제4조에서는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원래의 조문은 아래와 같이 달랐다. 


“부패범죄, 경제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중”이 “등”으로 바뀌었다. 이 한 글자 차이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 원래의 조문대로라면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중에서만 수사를 개시할 수 있지만, 바뀐 조문에 따르면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외에도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가 더 있다는 뜻이 된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등”을 뜻하는 표현 중에서 “include, but not limited to”라는 표현이 있다. 일반문서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법률문서에서는 아주 흔하게 사용되는 문구이다. 무엇을 포함하지만 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문서에 명시적으로 나열한 것 외에도 해당되는 것들이 더 있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 두기 위해 사용한다. 한국어의 “등”과 같은 의미이다. 


JN Contemporary Art LLC v. Phillips Auctioneers LLC 케이스에서 이 표현의 해석이 쟁점이 되었다. 피고인 Phillips Auctioneers LLC는 COVID-19로 인해 경매를 열지 못했고 COVID-19는 불가항력적 사유이므로 자신이 계약상의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보통 계약서에 포함되는 불가항력 조항은 계약 당사자가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인해 해당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에 따르는 책임을 면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원고인 JN Contemporary Art는 피고의 입장과는 반대로 COVID-19은 불가항력적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니 의무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둘 간에 체결한 계약서 중 해석이 문제가 된 부분이다.  



"In the event that the auction is postponed for circumstances beyond our or your reasonable control, including, without limitation, as a result of natural disaster, fire, flood, general strike, war, armed conflict, terrorist attack or nuclear or chemical contamination, we may terminate this Agreement with immediate effect. In such event, our obligation to make payment of the Guaranteed Minimum shall be null and void and we shall have no other liability to you."  


이 조문에는 COVID-19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피고는 “including, without limitation”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이 표현은 이 조문에 나열된 사유들 외에도 다른 사유들도 포함될 수 있다고 해석되고, COVID-19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조항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의 쟁점은 바로 이 표현의 해석이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항소심이었던 뉴욕 제2순회법원은 이 표현을 넓게 해석해 COVID-19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 피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률문서의 해석에는 절대불변의 진리 같은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송이 발생하면 어느 쪽이 얼마나 더 타당한 근거와 설득력 있는 논리로 재판부를 설득하느냐가 관건이고, 다시 말해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쪽이 승소하게 된다. 결국, 


모르면 손해 보고, 알아야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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