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코타 키나발루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붉게 물들어 버리는
가을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사랑도 저만큼은 열렬해야 해
소리쳐 본다
용혜원 <가을 노을> 中
숙소 입구에 들어서자 전통 악기 쿨린탕을 켜는 카다잔족 악사가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샹그릴라 탄중아루는 본래 왕, 대사관, 유명 인사 등을 위해 만든 호텔이다. 코타 키나발루가 ‘바람 아래의 땅’이란 의미이기 때문인지, 샹그릴라 탄중아루는 ‘바람 아래 누운 호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코타 키나발루의 석양은 그리스 산토리니, 남태평양 피지와 함께 세계 3대 해넘이로 손꼽힌다.
“사바에 처음 왔니?” 호텔 직원인 아미라가 물었다. “사바? 코타 키나발루를 말하는 거야?”라고 물으니 코타 키나발루는 사바에 속해 있는 작은(?) 지역이라고 알려준다. 그녀는 마침 오늘이 쉬는 날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매니저가 요청해서 출근을 했었다고 한다. 샹그릴라 탄중아루의 선셋바에 자리를 잡고 비교적 평범한 칵테일을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금씩 주황빛으로,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선셋이 참 예쁘다”라고 말하자 아미라가 대뜸 말한다.
“오늘은 구름에 가려져서 그리 아름다운 선셋은 아니야. 어떤 날은 세 가지의 색깔로 층층이 발하는 선셋도 볼 수 있어. 그 모습을 꼭 봐야 해. 정말 아름다워!”
이 말만 들어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셋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석양을 매일 보는 현지인의 자부심을 알 만했다. 아미라의 말을 들으면서 이미 머릿속에는 붉은빛, 오렌지빛, 푸른빛까지 삼색의 노을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외지인의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노을이 해질녘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살갗으로 스민다. 아미라는 평소에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알려져 주위에서 한국에 가는 사람들이 적잖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월요일이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둘 다 공항에서 바로 출근을 해야 한다”며 한숨짓자, 아미라는 “얼마 전에 쿠알라룸푸르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우리 남편도 일 때문에 돌아와서 쉬지도 못하고 곧장 출근을 하러 갔다”며 일부러 찡그린 표정을 지어보인다.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직장인들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참 그렇게 웃었다.
“아가야, 노을이야, 노을, 엄마아빠랑 노을 보러 왔지?”
졸린지 눈을 비비는 아기를 안고서 석양을 가리켰다. 아이는 여러 빛깔로 물든 하늘이 장난감만큼 흥미롭진 않은지 석양은 아랑곳없이, 이미 반쯤 졸고 있었다.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유모차에 눕혀 주었다. 사실 우리는 비단 노을 때문이 아니라, 노을 안에서 그 순간을 공유하는 사람간의 교감에서 비로소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최고의 석양’을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