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
비행기 안에서 일출을 보았다.
베트남 나트랑(냐짱)으로 가는 기내에서 붉은 빛이 어른거려서 잠에서 깨보니, 창밖에 붉은 태양이 떠오르며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진한 햇빛이 아이에 이마에 걸리어, 마음속에서 묵직한 감정 덩어리가 움직였다. 그 감정은 얼음과 성질이 비슷해서, 일정 온도 이상이 되어야만 스르르 녹기 시작했다. 비행기 밖의 일출을 보며, 얼어있던 감정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근심걱정, 그런 감정이었다. 창밖의 서광은 이 감정에 직접적이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작용했다. 겨우내 추웠던 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구름을 뚫고 해가 얼굴을 내미는 순간부터 빛이 찬란하게 하늘을 메우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흔들어깨워 '잘 때가 아냐, 저것 봐'하며 외치고 싶은 그런 광경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Enclosed Field with Rising Sun'에 가까웠다. 아니,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The Sun'에 좀 더 가까운가. 두 그림 모두 눈부신 태양빛이 대지를 뒤덮는 강렬한 태양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 빛의 크기가 과장된 만큼, 정반대되는 두 화가의 정신적 고통이 대비된다. 태양이 천지를 강렬하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 채운 반 고흐의 그림 생레미병원에 입원해 있던 1889년 12월, 병세가 호전되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었다. 더없이 강렬한 태양열처럼, 고흐의 마음에도 다시 한번 생에 대한 강렬한 희망이 불타올랐던 걸까.
일출의 여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눈을 찌푸려지게 할 만큼 뜨거운 일출을 바라보며 바다 앞 잔디 위에서 피부색도 국적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과 요가와 명상(리조트 프로그램)을 하던 일, 일부러 일출시간쯤 깨어 해가 말갛게 얼굴을 내미는 모습을 보는 일도 마음이 시리던 여행자의 하루로서 썩 좋은 시작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연습하는 아기는 새벽 댓바람부터 기저귀 차림으로 데리고 나온 엄마 옆에서 머물렀다. 자기 스스로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얼마 전까지 엉금엉금 기어다녔는데, 이제는 두 다리로 튼튼하게 설 수 있는 데다가, 마음 가는 대로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생경한 경험에 온마음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루마다 새로 태어나는 해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하며 광휘를 밝혔고, 아이는 아이대로 찬란한 햇살 아래서 갓 걸음마를 떼고 있었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해가 뜨기 전에 얼마나 주변이 어두운지 우리는 잊어버린다. 잠시 후면 눈부신 빛으로 떠오를 태양에 이미 마음이 쏠리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이 어둡게 느껴진다면,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되뇌어보라. 그 말을 한번만 해선 아무 소용이 없다. 자꾸 되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