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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Oct 29. 2022

보고 싶다

형은 3개월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임종 3일 전까지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며 흐릿해져 가는 눈동자를 깜빡였다. 형은 하늘나라로 가기 며칠 전 귤이 먹고 싶다며 귤을 사달라고 했다.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까만 비닐봉지에 귤을 가득 담아서 병실로 왔다. 천천히 귤을 까서 형에게 건넸고 형은 힘겹게 귤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입술은 창백했고 힘없는 눈동자만 천천히 껌뻑였다. 그날 호스피스 병실에서 형과 함께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것이 형과 함께한 마지막 기억이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고 난 후에도 치료를 더 잘하는 병원은 없느냐는 형의 물음에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곳이 호스피스 병원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여기서 치료 좀 받아보고 체력이 회복되면 다른 병원으로 가보자 형"


0.1%의 가능성도 놓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것이 가족의 마음이었고 형의 마음이기도 했었나 보다. 형이 결정한 호스피스 병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삶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은 억울함이었을까? 형은 생명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 보였다.


산은 형과 추억이 많은 곳이다. 형과 함께 한 마지막 등산.


형은 일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온 형에게 삶은 즐거운 것, 행복한 것이기보다 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나 보다. 초점을 잃어가는 형의 눈을 보며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입안을 적셔줄 수 있는 귤을 까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한없이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것이 중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평생 가족을 위해서만 일한 형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일이라는 것이 슬프고 또 슬펐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에어컨도 없이 몇 년을 살다가 얼마 전 에어컨을 샀지만 에어컨 전원 버튼도 눌러보지 못하고 무심하게 하늘나라로 갔다.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도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침대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강하고 강했던 형이 내 앞에서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내게는 아버지와 보다 더 아버지 같았고 친구보다 더 친구 같았던 형. 11월이 되면 형이 더 생각난다. 어느 가을날 형의 전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형, 너무 걱정하지 마. 요즘은 의술이 좋아져서 웬만한 건 치료 잘 받으면 낳는데"


형은 특유의 투박하고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쉽게 볼 병이 아니야"


형과 북한산에 자주 왔다.


형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영상편지도 열심히 찍었는데 영상은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형은 어떻게 살아야 했었을까? 가족도 없고, 애인도 없고, 취미도 없고, 즐거움도 없었던 형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아파트 한 채와 에어컨 하나만 남기고 하늘로 간 형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았을까? 장례식을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며 형이 사용한 카드내역을 보게 되었다.

파, 당근, 달걀, 된장, 콩나물.


6개월 동안 쓴 카드 내역을 모두 뒤져봐도 명절 때 우리 아이들과 외식을 한 것을 제외하곤 한 번도 밖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다. 나는 하늘에 있는 형에게 무슨 말을 어떤 말을 해야 하나? 형이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을 원하는 데로 하면서 살았다면, 아마 지금 내가 누리는 소소한 행복은 없을 런지도 모른다. 형은 그렇게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몸을 태우고 하늘로 갔다. 


다리를 다쳐서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휠체어에 앉아 계신 어머니를 목발을 짚으며 아들이 병원에 모셔다 드린 것이다. 작은 누이에게 그 말을 전해 들은 날 차에서 한 참을 울었다. 이제 형이 하늘로 간지 2년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하늘에 있는 형이 말해주는 것 같다.

"내 몫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라"


형을 생각하면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생각난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은 하늘에 있는 형이 내 준 숙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형 거기는 좀 어때? 나는 그냥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어. 즐겁기도 하고 안 즐겁기도 해. 염치가 없긴 한데 하늘에서도 동생 잘 되라고 응원하고 기도 좀 해줘. 보고 싶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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