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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Nov 09. 2022

17년 만의 대학졸업

돌아보면 나의 20대는 방황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대학 입학을 2번 실패하고 도망치듯 군대에 입대했다. 30개월 동안 열심히 군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다.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2년간 병원 치료를 했다. 2년간의 길고 긴 치료를 마치고 마침내 취직을 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간에 IMF라는 외환위기도 있었지만 큰 풍파 없이 잘 견디어 냈다. 하는 일에 매력도 느끼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쯤 공부에 대한 미련이 다시 생겼다. 


1년간 고민 끝에 다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시간 부족이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24시간 중에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하루에 2-3시간이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공부를 해야 했다. 어떤 사람이 아인슈타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위대한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까?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밥 먹고 그것만 생각했으니까"


나도 회사일 하고 공부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 집,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하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런저런 잡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졸업을 해야 하는가? 직장도 있고 결혼도 했고 승진과 연봉에 관련도 없고 아무 쓸모없는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 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운전을 하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복잡한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메모지를 꺼내 들고 외우고 있는 것인가? 알 수 없는 회의감이 들었다.


지인들의 경조사까지 빠지며, 위독하신 아버지 병문안까지 미루어 가며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꽃피는 봄에 꽃구경 한 번 못 가고, 나뭇잎의 색깔이 빨갛게 노랗게 바뀌는 것도 모르면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있어야 하는 삶이 옳은 삶일까? 하고 있으면서도 왜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5년 동안 그토록 치열하게 살면서 얻은 결과 치고는 너무도 단출한 종이 한 장에 글씨 몇 자가 적혀있는 졸업장이었다.


강원도 양구의 초등학교 교정


그것으로 삶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무슨 이유로 졸업장을 그렇게도 원했던 것일까? 나에게 그 종이 한 장의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도 무엇 때문에 종이 한 장을 받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다만 19살 고등학교 3학년에 나 자신과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늘 머릿속에 있었다. 꿈은 없어도 약속은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쓸모도 없는 공부를 하고 졸업장을 받았던 5년이라는 시간이 내가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보람되고 뿌듯한 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때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던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때보다 열심히 살 자신은 없다. 그 후로 배터리가 방전된 로봇처럼 한 동안 몸과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열정도 사라지고 의욕도 줄어들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봄에 꽃구경도 한 번 못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년, 2년, 3년 무난하게 일상은 흘러갔다. 큰 탈없이 흘러가는 일상이 행복하면서도 변화 없는 삶이 무료했다. 이것이 권태일까? 권태로움을 느낄 만큼 내 삶이 여유롭지는 않은데....."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가족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나도 뭔가 남길 것이 없을까? 나와의 약속을 지켜서 다행인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을 잊고 산지 오래돼서 기억을 꺼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떤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시간은  빨리 간다". 내게 그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끄적일 때 즐겁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기로 결심했다.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열심히는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만족도가 높은 삶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집 가훈처럼 근면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보다. 신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숙제를 내주시는 것 같다. 끝난 거 같으면 다시 숙제를 주시고 끝난 거 같으면 또 주시고...... 

인간은 신이 주신 숙제를 숙명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살아야 하는 가 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못 받아들이느냐 차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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