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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Nov 04. 2022

아내는 구직 중

오늘도 아내는 구직사이트에 접속해 이곳 저곳을 분주히 둘러보고 있다. 11개월째 구직 중이다. 이제 포기할 만도 한데 지치지도 않가 보다. 2년 동안의 코로나 팬데믹의 시기에도 결석 한 번 없이 학원을 다녔고 마침내 자격증도 땄는데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34도를 육박하는 한여름에도 더운 실습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7층 건물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며 얻는 자격증이다.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오면 집안일을 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심하게 감기가 온날도 새벽까지 책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고 미안했다. 나도 틈틈히 집안일을 도왔고 출근길에 아내를 학원에 바래다주기도 했다. 밤에는 도서관 앞으로 아내를 데리러 갔고 시험 보는 날에도 일찍부터 응원을 나갔다. 남들이 볼 때는 수많은 자격 중 하나이고 시시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내에게는 절실한 자격증이었던 것 같다.


풍운의 꿈을 안고 도전한 자격증. 15년간 집안일만 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가 일을 한다는 기대와 설렘이 컸던가 보다. 수 없이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100군데가 넘는 회사에 지원을 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경력 없는 아내를 찾는 곳은 없었다. 남편으로써 막연한 기대과 희망을 주기보다는 현실적이 조언을 많이 했는데 따뜻한 위로를 할걸 그랬나 보다. 요즘 가끔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1년 6개월간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도 땄지만 면접 기회조차 한 번 얻지 못하고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하염없이 떠돌아다닌다. 노력한 것에 비해 아무것도 손에 쥐어진 것이 없다.

"직장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야.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알아봐. 당신 일 안 한다고 당장 굶어 죽는 거 아니잖아."


위로라고 한 말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구직의 슬픔을 견디다 못해 지자체에서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의 일을 하기 사작했다.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극약 처방을 내린 것 같다.


설악산. 아내와 아이들과 설악산에 다녀왔다. 즐거웠다.



외벌이는 나의 선택이었다. 결혼 후 아내는 직장을 다니겠다고 했지만 내가 원치 않았다. 결혼하지 마자 아기가 생긴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아내가 나를 맞아 준다는 것이 좋았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아내가 있고 방과 후 집에 가면 엄마가 있는 집이 내가 꿈꾸던 가족이었다. 어릴 때는 엄마의 손과 엄마의 사랑이 너무도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맞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게 커주었다.


이제 아내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통의 부부들이 격하게 부부싸움할 때 하는 수사적 표현으로 "당신 만나서 내 인생 이렇게 됐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아내도 나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조금 더 넓은 집에서 큰 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아내도 결혼 전에는 직장 동료들과 맛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식사 후에는 테이크 아웃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며 남산공원을 산책하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았었다.


결혼 초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 일이다. 카트에 이것저것 한가득 식료품과 과자를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쇼핑 내역을 확인하던 중 아이들이 먹는 과자 한 봉투가 더 딸려 온 것을 발견했다. 직원의 실수인 것 같다. 보통은 그냥 모른 척하고 기분 좋게 먹기도 하는데 몇 푼 안 되는 과자를 돌려주려고 다시 마트에 가서 전해주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은 그 때와는 많이 다르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내는 요즘 믹스커피를 마신다. 아메리카노만 먹던 아내는 얼마 전부터 믹스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행사용으로 나온 상품인데 가성비가 좋다며 즐거워 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브랜드 커피 한 잔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이것도 좋다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미안하다. 사랑하지 않아서 싸웠던 것이 아니고, 사랑하지 않아서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미숙한 남편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아내가 취직을 하면 더 좋겠지만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집안일하면서 1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잘했다. 기회는 오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까지 해오던 데로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진짜 행복은 돼지고기를 먹느냐 소고기를 먹느냐의 차이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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