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북한산, 송추, 장흥
젖병을 물고 있던 나의 아들 딸은 이제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 학원, 학교, 학원.
참 바쁘기도 하다.
미술로 진로를 바꾼 딸은 주말에도 하루 종일 수업이 있다.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인 것이다.
엊그제는 수행평가 숙제를 한다고 생리휴가를 냈다. 아내는 늦게까지 친구랑 전화통화하지 말고 숙제를 하라고 다그쳤다.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네가 선택한 길이니 네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미안했다. 좀 더 따뜻한 말로 표현을 할 것 그랬다.
세상에 나가서 살아내기 위한 연습을 하는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안쓰럽고 안쓰럽다. 솔직히 나는 학생 때 우리 아이들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아들 딸은 나보다는 잘 살 것이라고 믿는다. 아빠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낮에는 또 푸닥거리가 한 판 벌어졌다. 아들이 과자며 음료수며 먹고 치우지 않는 것이다. 수 없이 말했는데 바뀌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아내가 폭발한 것이다. 아들은 치우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아내 눈치가 보여서 또 한 마디 거들었다.
"야! 밤 11시에 알람 맞춰놓고 알람 울리면 쓰리기통 비우고 자!!!"
사실 세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내의 분노가 극에 달해서 가만히 있으면 나에게 화살이 돌아올 것 같아서 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한 마디 거들었다. 평소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고 나에게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냥 건강하고 나쁜 짓 안 하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
좀 더 다정해야 한다.
오랜만에 도봉산에 가려고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있는데 딸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달라고 한다. 딸은 아침에 미술학원에 가서 저녁에 온다. 하는 수없이 도봉산 계획을 취소하고 집 앞에 있는 북한산에 다녀왔다. 단풍이 늦는 것인지 아직 산 아래까지 내려오지 않은 것이지 색깔이 별로였다. 기후 탓도 있는 것 같다.
일요일은 친구를 만났다. 싱글인 그는 1년에 5~6차례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다.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보고, 연애도 하고 싦을 즐기고 있다. 자유롭게 사는 그가 부러웠다. 예전에는 가족이라는 절대적인 비교우위가 있어서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절대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자기 싦에 충실한 것이 행복인 것 같다.
그와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오랜 시간 동안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좋다. 밥을 먹고 송추역에 가보고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서 딸기라떼를 마셨다. 그리고 차 안에서 옛날노래도 함께 들었다. 참고로 남자다. 통한다는 것은 남, 녀, 나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다른 부분도 많지만 감성적으로 통한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연애를 할 때는 감성이 맞아야 하고 결혼을 할 때는 이성이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