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제이 Nov 24. 2022

택시 드라이버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

살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자주 하는데 "좋아합니다"라는 말을 해 본 기억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좋아요"라는 말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좋아하면 안 되는 나이가 됐다. 슬프다. 아내와 결혼을 할 때도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결혼하는 거지"라는 말로 두리뭉실 넘어갔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친구 K.  

그는 고등학교 3년을 함께 다닌 짝꿍이다. 이 세상에서 나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친구. K와는 처음 해 본 것들이 많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을 보았고, 뮤지컬을 보았고, 콘서트장에 가 보았다. 함께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셔봤고, 꽃피는 봄날에 고궁에 가서 사진도 찍었고, 도서관 벤치에 앉아서 연인처럼 별을 보기도 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처음 소개팅을 하러 가던 날 그가 옷을 사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그 때 돈이 없어서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날 소개팅에서 만났던 그 녀는 최악이었다. 지, 덕, 체가 최악이었다. K는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그 시간들이 고맙다. 누군가 말하지 않던가?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고 추억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고. 그는 내게 선물 같은 사람이다. 


사람은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고비들이 찾아오는데 그 고비의 첫 번째가 나의 10대였다. 큰 힘이 되어 줬던 K는 그래서 더 애틋하다. 그는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최근 들어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메이저 출판사에서 20년간 직장 생활을 한 후 퇴직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택시 드라이버가 됐다. 그의 말을 빌면 그는 택시가 천직이라고 했다.


여수


얼마 전 K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약속을 취소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약속이었는데 아쉽고 미안했다. 머피의 법칙처럼 약속이 있는 날이나 집에 아이가 아픈 날에는 어김없이 회사에 급한일이 생긴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씻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HYUN, 지금 너희 집 앞으로 가고 있으니까 커피 한잔 먹고 들어가. 10분 후면 도착한다"


급하게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집 앞의 공원으로 나갔다. 갑작스러운 전화지만 반가운 전화. 살면서 집 앞까지 찾아와서 와서 나를 기다려 준 사람이 있었던가? 아내와 연애할 때 아내의 집 앞에서 기다려 본 적은 많았지만 누가 나를 기다린 사람은 없다. K와 함께 있으면 나도 특별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든다. K는 얼마 전 사랑하는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렸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혼자서 간병했는데 화장실을 모시고 가는 것은 물론 목욕까지 시켜드리는 모습을 보며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병든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다르다. 왜 다를까? 어떤 요인이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많이 사랑 받은 사람이 많이 베푸는 것 아닐까?  나를 헌신하여 상대를 보살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K는 지금 비혼이다. 80세가 넘으신 연로하신 아버님을 모시며 둘이 살고 있다. 아버님도 어머니가 하늘로 가신 후에 병세가 나빠지고 있다. 일하고 아버님 수발하고 유튜브와 넷플릭스 보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K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외로움을 모른 채 외롭게 살다가 죽을 거야"


그는 외로울 틈이 없다고 한다. 가끔 지독한 외로움 밀려오지만 외로운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고수의 숨결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K. 그는 택시 드라이버.

택시 드라이버 택시 드라이


이전 10화 가족이란 무엇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